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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미영 전 인천시 부평구청장
2016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마지막 여행지로 부탄을 선택했다. 귀국한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부탄 법전의 문구를 올렸다. "정부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면, 정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문 대통령이 귀국한 바로 다음 날, 당시 부평구청장이었던 나와 부평구 7급 공무원들이 부탄에 도착했다. ‘행복의 나라’로 유명한 부탄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GNP(국내총생산) 대신 GNH(국민총행복지수)를 국정운영의 주요 지표로 삼고 있었다. GNH를 국가발전 전략으로 채택한 이후 부탄은 사회·경제적으로 전혀 다른 나라로 변모했다. 평균 수명이 30년 늘고, 90년대에 50%였던 빈곤율은 12%까지 줄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백문이 불여일견, 우리는 현지에서 확인했다. 담당 고위직 공무원도 만나고, 전문가 브리핑도 받고, 평범한 주민들의 웃음도 만났다. 부평구청으로 돌아온 우리는 행복정책에 대한 신념을 갖고 예산을 배정하고 정책개발과 연구에 들어갔다.

 이듬해 5월 문 대통령이 부탄의 이 행복지수 GNH를 한국식으로 개발해 도입할 것을 지시했다는 기사를 읽고 기뻤다. 그때 이미 우리 부평은 부탄의 행복지수를 벤치마킹한 BNH 지표를 한발 앞서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7년 12월 ‘행복실감부평’을 위한 정책연계 연구 최종보고서를 냈다. 이를 위해 지역주민과 전문가, 연구진, 구청 직원들이 함께 움직였다. 참여한 공무원들은 자신의 업무를 구민행복의 관점에서 성찰하게 됐고, 그 속에서 공무원들의 의식이 바뀌었다. 참여한 구의원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구정은 구민을 행복하게하기 위한 시스템이다’라는 철학이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행복정책’은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혁신적인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GNP가 높으면 잘 사는 나라다’, ‘경제를 성장시키면 위대한 지도자다’라고 생각해왔다. 오로지 ‘경제성장’을 외치며 숨 가쁘게 달린 결과 100달러도 안되던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달러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국가별 행복지수에서는 언제나 중하위권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OECD 38개국 중에서는 29위로 바닥 수준이다. 돈은 잘 벌지만 불행한 나라가 과연 ‘잘 사는’ 나라일까? 정치와 행정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지금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기에 놓여 있다. 올해 초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성장 중독 시대에서 벗어나 ‘더불어 행복한 나라’로 가기 위해 ‘국민총행복전환포럼’을 창립했다. 이 ‘성장에서 행복으로’ 패러다임 변화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2011년 UN은 "행복은 인간의 근본적 목표이며 보편적 열망이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은 그러한 목표를 반영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하고 행복을 공공정책에 반영하는 새로운 척도를 개발할 것을 결의한 뒤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간해왔다. OECD도 매년 ‘더 나은 삶의 지수’를 발표한다. 행복지표 개발과 정책은 많은 나라의 정부 정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새로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꾸려지면 ‘사람중심’ 문재인 정부가 행복정책을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국가뿐 아니라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행복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5년 전인 2013년에 ‘주민의 행복실감 향상을 목표로 하는 기초자치단체연합’이 만들어져서 50개 이상의 지자체들이 연합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진보의 성패는 아직 못 가진 사람들이 충분히 갖게 하는 것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 말을 행복정책의 시대에 맞게 바꾼다면, 국민총행복지수를 통해 정부가 주목하는 사람들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어야 하며,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정책의 목표여야 한다.

 개발 위주, 성장 위주의 옛 안경을 벗고, 다가올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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