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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권홍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소장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인문학을 지켜야 하는 대학에서 인문학과들은 취업이 어렵고 지원자가 없다는 이유로 홀대받고 축소되고 있다. 인간보다는 ‘산업’혁명이 우선되기 때문에 쉽게 인간 자신에 대한 성찰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힘들어지는 원인은 사회적 가치의 우선순위가 인문학보다는 산업, 경제와 관련된 분야에 주어지다 보니 재정은 물론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 나오는 인문학은 스스로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보다 획일적인 해석을 따르거나 잘 된 요약을 암기하는 수준의 학습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역사를 예로 들면, 역사적 흐름이나 원인에 대한 성찰 그리고 미래에 대한 교훈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질문보다는 누가 책을 몇 권이나 저술했느냐, 몇 년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느냐 등 단순 암기 문제가 많다. 여기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도 정권의 변화에 따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자의적으로 왜곡하기 일쑤다. 그러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암기력 테스트 과목이 된 인문학을 싫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를 바라보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쉽게 일자리를 잡고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게 되는 공학과 자연과학, 의학, 법학 위주로 전공이 선호되는데, 공학과 자연과학은 모르지만 법학이나 의학은 생산적이지 못한 분야이다. 특히 정치나 법학은 생산된 사회적 재화를 분배하는 학문이지 새로운 재화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비생산적인 분야에 너무 많은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반면, 인문학은 생산적이다. 물질을 만들어내는 생산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철학, 가치, 문화를 생산을 하는 학문이다.

 널리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물적 재화보다 정신적 안정,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해진다. 아마도 재화의 생산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기계들의 몫으로 넘어가고, 창의성·인간성을 중심으로 하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일들이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서양 중세시대에 인간이 신에 의해 지배되었던 것처럼, 인간이 기계에 의해 지배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소양이 바로 인문이다.

 그런데 인문학이 살기 위해서는 먼저 인문학자들이 변해야 한다. 고리타분한 강의가 아니라 삶의 인문학으로 시민들의 참여가 유발돼야 한다. 아직도 우리 인문학은 유명인의 강의로 이해되고 있다. 예수나 석가모니는 실천적 혁명가였다. 불평등과 압제에 물러서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실천했던 분들이다. 또한 과거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나갈 미래의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의 인문학 강의는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 정도의 정보는 네이버나 구글에 물어보면 아주 깔끔하게 설명해준다.

 인문학의 부활을 위해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이 우리의 삶에 반드시 필요하며, 인문학이 즐겁고 생산적이라는 점을 시민들에게 확신시켜 줘야 한다. 그리고 인문학적 생산성은 현장에 기초해야 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발생해야 한다. 오래된 책과 싸우고 그 속에서 진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진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21세기 오늘, 우리의 문제에 대한 인문학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학, 경제학, 법학 심지어 자연과학과 공학이 함께 문제를 나누고 고민하는 마당을 인문학자들이 제공해야 한다.

 인문학자들이 변하는 만큼 국가 또한 해야 할 일이 있다. 인문학법이 말하는 것처럼 국가는 인문학과 인문정신문화를 진흥하고 사회적으로 확산할 책무가 있으며,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고 나아가 국민의 정서와 지혜를 풍요롭게 하며,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인문학이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기업이나 사회의 지원이나 인문학을 통한 사업의 수행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 지원이 요구되는 것이다. 인문학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도 인문사회분야의 순수 연구 개발비가 국가 전체 연구 개발비 예산의 1.6%에 불과하다면 인문학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인문학은 가난해야 한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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