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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식 사회부장

그리 오래지 않은 얘기다. 지방선거 이후 공무원들 사이에서 ‘손가락을 자르자’는 무시무시한 얘기가 떠돈 적이 있다. 농(弄)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간담이 서늘한 이 말은 진짜 손가락을 자르자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후보에 대한 실망을 담은 자조(自嘲)다. 당시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말이 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8년 동안 지방정부를 이끌었던 이에 대한 실망은 새로운 인물을 선택하게 했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인수위원회 진행 과정에서 밑천이 드러났다. 새로운 희망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당선자 측근들은 인수위원회 사무실 선정 과정부터 공무원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고압적이었다. 또 인수위원회를 진행하면서부터는 상당수의 시책이 여러 이유로 백지화됐거나 백지화가 암시됐다. 일부 공무원들은 잘릴 수 있다는 유무형의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행태를 ‘점령군’에 비유하며 몸서리를 쳤다.

새 지방정부가 들어서 업무를 시작한 후에는 더 많은 원성이 쏟아졌다. 공식, 비공식을 떠나 맨 앞에 자리 잡은 당선자는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지 못했다. SNS에 심취한 것인지, 행사가 재미없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오죽했으면 한 간부가 공식 장소에 들어가기에 앞서 휴대전화를 뺏어들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임기동안 나름 열심히 했다고는 하나 처음부터 잘못된 모습을 본 탓인지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 것 같다. 그는 시민의 선택을 다시 받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또 4년이 흘렀다. 매번 선거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런 선거를 꼭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한 번에 선택해야 할 후보들이 너무 많다. 구의원과 시의원, 구청장, 시장, 교육감 그리고 구의원 비례와 시의원 비례까지 7개의 선택을 해야 한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후보들의 면면을 일일이 파악할 수도 없고 누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언론에서도 후보들의 참모습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럴 지면도 없지만 언론 스스로도 잘 모르는 탓이다. 늘 취재현장에서 후보들을 보고 있는 나조차도 후보들의 참모습을 모르겠다.

얼마 전 집으로 배달된 공보물을 펼쳐놓는 순간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어지간한 책 한 권 분량의 공보물을 출마 단위별로 분류한 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살펴봤다. 그들이 알리고 싶은 부분은 알겠는데 공보물만 가지고는 후보들의 참모습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모시를 고르려다 삼베 고른다’는 속담이 있다. 아마 바둑 용어인 ‘장고 끝에 악수 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출마한 후보 중 마음에 쏙 드는 ‘모시’같은 후보는 없는 듯싶다. 어찌됐든 지난 8일과 9일 양일간 실시된 사전투표에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대학생 딸과 소중한 표를 행사했다. 모시는 고르지 못했다. 그래서 답답하고 ‘선거를 꼭 이렇게 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안 뽑는다고 당선자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닌 것을.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질 좋은 삼베라도 골라 투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유권자로서 당선자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게 있다. 제발 공약 좀 꼭 지켜달라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약속한 것이니 만큼 반드시 지켜주기를 바란다.

또 하나는 4년의 임기 내내 선거 때의 마음을 지켜줬으면 한다. 흔히들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선거 때 결과를 기다리는 절실한 마음으로 주민들을 대한다면 최소한 선거를 다시 치르자는 말은 안 나올 것이다. 이게 모시가 아닌 삼베를 골라야 하는 민초들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선거가 코앞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마땅한 후보가 없다고 투표를 포기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모시가 아니더라도 질 좋은 삼베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삼베가 주민들에게 진짜 효자노릇을 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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