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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보현 인천서부소방서 검암119안전센터 소방사

올해 초 미국 북동부에는 ‘그레이슨’이라는 명칭이 붙은 최강 한파가 닥쳐 왔고, 밤새 내린 13㎝의 눈은 북동부 전 지역을 하얗게 덮여 버렸다. 놀랍게도 시민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소화전 주변의 눈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주택 화재가 발생했고, 시민들의 예방 의식 덕분에 현장에서 소화전을 빠르게 찾아 화재를 신속히 진압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혹한으로 강추위가 계속돼 온열기구의 사용이 많아져 화재 위험이 증가했지만, 시민들의 예방의식으로 큰 피해를 막아낸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지난 1월 1일 경포대는 해맞이 손님맞이로 북적거릴 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사진에 담겼다. 해맞이 방문객의 차로 보이는 차량 십여 대가 경포119안전센터 앞을 불법 주차로 점거해 소방차가 출동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화재나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만약 일어났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뻔했다. 제천 참사가 있은 뒤 불과 열흘 뒤 대한민국의 안전이 흔들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소화전 불법 주정차’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인터넷에서 쉽게 미국이라는 나라가 소방 활동에 방해되는 장애물과 불법주정차 차량들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소방 활동에 있어 불법 주차 차량 또는 장애물을 강제 이동조치 하거나 파괴한다. 이에 따른 보상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도로교통법에 의거해 소화전 등 소화용수 시설로부터 5m 이내에 주차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로 처분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지켜지는 곳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왜 소화전 근처에 주차를 하지 못하게 해놓았으며, 왜 소화전이 중요한가?

 소방력의 3요소는 소방대원, 소방장비, 소방용수이다. 소화전은 화재 진압에 생명수와도 같은 소방용수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소화전은 화재 시 소방차에 물을 공급하거나 직접 호스를 연결해 불을 끌 수 있도록 한다. 소방차가 가진 물로는 화재 진압 시 길어야 5분 정도 사용하면 금세 바닥나고 만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화전의 원활한 사용이 절실하다. 이 소화전들은 불법 주정차된 차량이나 버려진 가구, 쓰레기들로 가려져 보이지 않거나, 물을 보급해주는 호스를 연결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면, 물을 공급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대처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되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가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하면 소화전 점령을 가장 먼저 실시하는 이유이다. 작은 관심과 배려로, 나 자신 혹은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소화전 주변 불법 주정차 하지 않기, 소화전 주변 쓰레기나 장애물 등을 쌓아 두지 않기 등이다.

 그 어떤 홍보와 강력한 법적인 제재보다도 강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시민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소화전 주변은 ‘불법 주차 금지구역’, ‘소화전은 생명수’ 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화재 예방의 올바르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대한민국 안전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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