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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정경부장

이제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가 왔다. 그 불편은 고통이 깔려있는 불편(不便)이요, 치우침이 없는 불편(不偏)이다. 둘 다 아픔이 따르기는 매한가지일 게다. 앞에 것은 ‘바닷물이 밀면 배는 한꺼번에 떠오른다’고 믿는 자유 시장경제의 배신에서 오는 쓰라림일 게다. 나중 것은 정치인과의 맹목적 친분을 거침없이 도려내고 그들의 설레발을 분노로 발라내야 하는 비정(非情)이다. 하나같이 시대정신과 결의하고 이겨내야만 하는 마뜩한 괴로움이다.

 한국지엠 사태가 6·13 지방선거와 맞물려 우리나라 경제계와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정부는 채찍 대신 당근을 들었다. 신규 자금 8천억 원 투입이었다. 한국지엠의 철수를 막아내는 일만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인 양 먹튀 논란 등 비판여론을 달랬다.

 정치권도 맞장구를 쳤다. 지원을 안 하면 당장 사달이라도 날 것처럼 글로벌GM에 굽실거렸다. 글로벌GM의 경영진을 만나고 그들의 요구를 듣는 것이 무슨 큰 벼슬인 양 우쭐댔다.

 협상의 끝은 축제 분위기로 이어졌다. 글로벌GM과 한국지엠, 노동조합, 상공인, 정치인 등 2만여 명 참여한 ‘워킹 페스티벌’이었다. 가수들을 불러 공연하며 웃고 즐겼다. 지역 선거판에서는 ‘어느 후보는 GM차를 타느니 안 타느니’ 서로 손가락질하며 한국지엠 사랑의 잣대로 들이댔다.

 참 민망하고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깟 5㎞를 걷고 유명 가수의 노랫가락에 흥얼대며 한국지엠을 살린다고… 기가 막힌 노릇이다. 어떻게 하면 싸고 좋은 차를 만들까 밤새가며 궁리해도 모자랄 판이다. 제정신이라면 50% 이하로 떨어진 부평 제2공장의 가동률을 어떻게 끌어 올릴까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로만 하는 한국지엠 살리기 뒤에 파리 목숨인 비정규직 하청업체 근로자 1천200명이 부평공장에 있다. 가동률이 떨어져 2교대에서 1교대로 근무시간이 줄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정규직원이 평균 연봉 5천500만∼6천만 원을 받을 때 이들은 그들의 절반 임금을 타면서 쌔빠지게 일했다.

 그들의 절규를 누가 듣고 있는가. 글로벌GM이 들어줄 거라는 기대는 망상이다. 글로벌GM은 자유 시장경제를 불변의 가치로 신봉하는 기업이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자체 기술개발 대신 M&A로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를 쟁취했다. 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 각처를 떠돌면서도 경영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을 챙긴 기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글로벌GM이 고꾸라진 이유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이 그들에게 응답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끊임없이 시장화를 부여 잡는 글로벌GM이나 한국지엠에 맡겨서는 안 될 일이다. 협상이 끝났다고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앞을 내다보고 대안을 찾고 주문할 때다. 적극적 개입이야말로 오래지 않아 또 튀어 나올 한국지엠의 철수설을 막는 길이다.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200년 전 인신매매 금지와 노예해방을 외치는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됐다. 100년 전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호소는 철창행감이었다. 50년 전 식민지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 당했다. 이 아픈 역사는 자유 시장경제와 결탁한 정치의 전리품이었다.

 시대정신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치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깜냥도 안되는 한 국회의원의 발언이 선거판을 시궁창에 몰아 넣었다. ‘이부망천(離富亡川·이혼하면 부천으로 가고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 이었다. 여야는 기다렸다는 듯이 ‘원죄론’을 앞세워 상대 후보를 헐뜯기 바쁘다. 아무 짝에 쓸데 없는 과거를 들춰내면서 찧고 까부르고 있다. 선거판에서 들어야 하고 내놓아야 하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다’라는 미래 얘기는 양념 축에도 못 낀다.

 발전하는 사회를 이끌기는커녕 따라잡으려는 의지조차 읽히지 않는다. 불편하고, 불편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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