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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이번 지방선거는 진영과 무관하게 모든 후보가 4조 원이 들어가는 고교무상급식 이슈를 들고 나오면서 복지 경쟁이 과열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는 무상교복, 무상교과서, 등하교 교통비는 물론이고 주부수당, 청년배당, 아동수당 플러스 공약도 포함된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내놓은 선심 정책도 여기에 못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은 총 1조2천200억여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9개의 친서민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질세라 민주당은 1조5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초·중학생 540여만 명에 대한 무상급식을 대표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문득 8년 전 선거를 떠올린 이유는 그해 5월에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벌이진 유혈 시위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반정부 시위대와 군·경(軍警)이 충돌해 21명이 사망하고 870여 명이 다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태국 총리였던 탁신은 군사쿠테타로 쫓겨난 2006년 말부터 해외로 떠돌고 있었다.

 빈민층과 서민층을 중심으로 한 탁신 지지층들은 그런 탁신을 국가 지도자로 다시 삼겠다고 거리로 뛰쳐나왔던 것이다. 그의 달콤했던 포퓰리즘 정책의 맛을 잊을 수 없어서였다. 탁신은 집권 직후 농가부채를 3년 유예하고 모든 국민이 우리 돈으로 1천50원만 내면 기본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했다. 또한 도시와의 소득 격차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농촌 마을마다 3천500만 원씩을 나눠 줬다. 그리고 탁신은 모자라는 재정은 세금을 올려서 충당했지만 의료 서비스의 질이 현격히 떨어지면서 도시 중산층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결국 실각하게 됐다. 하지만 이미 단맛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탁신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흔히 대중영합주의나 인기영합주의로 번역되는 포퓰리즘은 엘리트 대서민·보통사람의 대결구도를 만든다. 특히 경제적 포퓰리즘은 외부적으로는 성장과 분배를 함께 내세우지만 실제적으로는 무책임한 분배정책으로 대중을 매수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포퓰리즘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국가적 무기력을 야기시켜 결국 선진국으로 가거나 그곳 문턱에 이른 국가를 주저앉히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과거 세계 5대 생산국이자 세계 7대 교역국으로 번성했던 아르헨티나가 그동안 여러 차례 국가 부도 사태를 겪으면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 근본 요인도 주지하다시피 포퓰리즘의 한 전형인 페론주의 때문이었다. 2000년에 이어 이번에 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것 또한 미국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 이외에 더 본질적으로는 포퓰리즘에 따른 만성적인 재정적자 덕분(?)이다. 한때 오일 달러가 넘쳐나면서 무상 복지를 선도했던 베네수엘라 역시 차베스의 포퓰리즘 유산이 남긴 불황과 독재의 늪에 빠져 국가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 나라는 지금까지 국영화한 석유산업에서 얻는 재원으로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기초 식료품과 생필품을 무상이나 원가 이하로 공급하면서 독재 권력을 강화해왔다. 서민들은 공짜에 취해 근로 의욕을 상실하고 부패에 편승해 재산을 축적한 부유층은 돈을 싸들고 해외로 빠져나가고자 한다.

 2012년 남유럽발 재정 위기의 진원지였던 포루투갈,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는 부실한 금융과 막대한 부채, 만성적 재정적자라는 공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랬던 스페인은 노동시장을 자유화하고, 은행들의 악성 대출을 규제하며, 재정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한 공공지출 축소 등을 단행했다. 스페인은 이와 같은 강력한 개혁정책으로 2013년에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우파 전진이탈리이당은 빈빈층에겐 세금 전액 면제를, 부유층에겐 상속세 폐지를 들고 나왔다. 여기에 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은 모든 국민들에게 월 780유로(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약속했다. 이 두 당의 연정합의로 이제 이탈리아는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권의 등장을 코앞에 두고 있다. 공자는 평소 불일치한 언행을 일삼는 제자 재여(宰予)를 꾸짖으면서 썩은 나무로는 조각이 불가하고 분토로 쌓은 담벼락은 손질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 자질이 잘못돼 어떤 가르침도 소용없다는 이 말은 빈 공약을 남발하는 현대판 재여들에게 해당되는 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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