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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사)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21세기를 맞아 인천시는 동북아시아의 중심도시로 또 세계 속의 선진 도시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인천은 한반도 북부와 남부의 중간에 위치하고, 육지와 해양을 연결하는 지역으로서 한반도 중심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명실상부 한반도의 거대한 관문이자 국제적 물류중심지, 산업·정보단지, 관광·휴양단지로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구비했다. 또한 역사적으로는 평화 시 국제교류의 통로로서 번성했고, 전시에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무력 충돌이 빈번하기도 했다.

 인천은 기원전 1세기 무렵 비류백제의 수도인 미추홀이라는 이름으로 문헌상에 처음 등장했고 이후 4세기 백제시대에는 한국 최초로 뱃길을 통해 중국과 교류한 지역으로 부각됐다. 고려 때 인천지역은 개성의 관문으로서 번창했고, 고려 말에는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하여 지명도 ‘경사의 원천’이란 뜻의 경원부(慶源府)로 격상됐다. 인천의 제물량은 지방에서 도성으로 향할 때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길목으로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삼남지방에서 도성으로 올라가는 조운선(漕運船)의 수로(水路)로 활용됐다. 조선시대의 해금책(海禁策)은 인천을 평범한 농·어촌 지역으로 쇠락하게 했지만,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도성으로 접근하는 외적의 대비와 유사시 종묘사직과 왕실의 보장처(保障處)로서 기능했다.

 19세기에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주요 격전지가 되면서 인천은 서양세력의 침입을 막는 최전방이었다. 조선을 위시한 동양 3국은 불평등조약을 맺고 개항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외세 압력 정도의 강도는 달랐다. 동양 3국이 겪은 외압의 차이가 이후 3국이 근대제국, 반식민지, 식민지라는 다른 길을 가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1883년 인천은 개항과 더불어 열강의 각축장이 됐다. 일본을 비롯해 청과 영국 등 각국 영사관이 개설됐고 치외법권 지역인 조계지가 항구의 중심부에 광범위하게 설정됐다. 각국은 조계지를 근거지로 각종 경제활동을 전개하며 조선 시장을 공략했다.

 인천은 근대문물과 시설을 도입하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청일전쟁 중 인천은 일본의 상륙거점이자 물자보급기지가 됐고 러일전쟁 발발과 동시에 일본은 인천 앞바다에서 러시아 군함을 격파했다. 1907년께 인천항은 조선 제일의 무역항으로 그 수출입액은 일본의 나가사키보다 많았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뒤 유통부문과 토지제도를 정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농업과 광공업부문에 걸쳐 광범위하게 개발 수탈했다. ‘산미증식계획’이란 이름으로 이뤄진 농업개발과 대지주 중심의 수리조합 운영은 한국인 소지주, 자소작농의 희생과 몰락을 초래했다.

 일제 말기 인천은 일제의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활용됐다. 국제규모의 항구라는 점으로 주로 화학과 기계 중심의 군수산업이 들어섰으며, 부평에는 인천육군공장이 세워졌다. 광복 이후에도 분단과 냉전은 인천을 피해가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유엔군의 상륙작전이 감행된 곳도 인천이었다. 일본이 남겨 놓고 간 공장과 시설로나마 가까스로 일구어 가던 경제가 거의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휴전선과 서해를 두고 남과 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이 대치하는 세계 냉전의 최전선이 됐다.

 휴전 후 20여만 명의 피난민까지 수용했던 인천은 각고의 노력을 다시 해야 했다.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중심에 인천이 있었고 지속된 경제 발전은 인천의 산업과 사회를 더욱 성장시키는 동인이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냉전체제가 종식되며 한반도에서도 남과 북의 화해와 교류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간 ‘전쟁’과 ‘평화’가 교차되기도 했지만 인천은 중국 및 북한으로 통하는 제일 관문이 됐다. 수도 주변의 보조적·의존적 역할을 하던 시기는 일찌감치 종식됐고 이제는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인천의 저력이 오랜 역사로부터 이어져 왔음을 기억해야 될 시점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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