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한 아파트 단지 내 빈병 수거함 모습. 우제성 기자 wjs@kihoilbo.co.kr
▲ 사진은 한 아파트 단지 내 빈병 수거함 모습. 우제성 기자 wjs@kihoilbo.co.kr
"하루종일 상자를 주워 팔아 봐야 4천 원도 안 되니까 값을 더 쳐주는 빈병을 수거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요. 그러니까 빈병을 구하기 쉬운 아파트 단지를 찾는데 자칫 절도범으로 몰리기 십상이지요."

인천시 서구에서 폐지와 빈병 등을 수거해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강모(76)할아버지의 토로다.

최근 몇 달 사이 폐지값 폭락으로 제법 몸값이 올라간 빈병 수요가 커지면서 일부 노인들이 아파트 단지까지 들어가 무단으로 빈병을 가져가 절도 논란이 일고 있다.

17일 지역 고물상에 따르면 몇 달 전만 해도 1㎏ 평균 140원 하던 폐지값이 최근에는 평균 40원으로 무려 70%나 폭락했다. 하루 종일 30℃에 육박하는 날씨에 100㎏의 폐지를 줍는다 해도 손에 쥐는 것은 4천 원이 고작이다. 반면 빈병 보증금은 지난해 1월부터 소주병 기준 40원에서 100원으로, 맥주병은 50원에서 130원으로 두 배 이상 인상됐다. 소주병 40개만 모으면 폐지 100㎏를 줍는 것과 같은 돈을 쥘 수 있다. 하루에 1만 원 수입도 거뜬히 올릴 수 있다.

서구의 한 고물상 업주 김천열(54)씨는 "공병 보증금이 올라가면서 폐지를 줍던 노인들이 현저히 줄었다"며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폐지를 모아 봐야 맥주병 3∼4개 가격에도 못 미치니 그럴 만도 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증금 상승으로 빈병 수집 경쟁이 붙으면서 대규모 주거단지 내 재활용품 수거함이 이들의 ‘노다지’로 떠올라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월께 부평구의 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70대 노인이 재활용품 수거함에서 빈병을 임의로 가져가다 관리사무소 직원과 언쟁을 벌여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당시 직원은 절도죄로 노인을 처벌하려고 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듣고 빈병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소동을 매듭지었다. 다른 지역 아파트 단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서구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이기호(70)할아버지는 "폐지값이 얼마 안 돼 빈병을 수거해야 그나마 먹고사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주택단지에서 모아놓은 빈병을 건드리면 도둑으로 몰리니 음식점이나 슈퍼마켓 등에 사정해 조금씩 가져온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아파트 및 주택단지 내 재활용품은 운반·수거·처리계약을 맺은 재활용업체의 재산"이라며 "빈병을 수집하는 노인들의 딱한 사정은 알고 있으나 임의로 가져가면 절도죄에 해당돼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제성 기자 wj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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