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1.jpg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 언론들은 ‘보수 궤멸’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패배한 정도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과연 적절한 표현일까?

 손자는 전쟁의 승부를 결정하는 다섯 가지 요소, 오사(五事)로 "첫째는 도(道)라 하고, 둘째는 천(天)이라 하고, 셋째는 지(知)이며, 넷째는 장(將), 다섯째는 법(法)"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도’는 백성들과 군주가 뜻을 함께하는 것으로 인심의 향배를 파악하고 인심을 얻는 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과 야당 지도자들(지금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두 번째 ‘천’은 계절의 변화로 천시(天時)다. 6월의 좋은 날씨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1948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주도해온 반공국가 체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변화 속에서 물거품이 됐다. 불과 3개월 전까지도 상상조차 못했던 평화체제의 전망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도 낡은 수구세력은 ‘쇼’ 운운하면서 변화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세 번째 ‘지’는 땅의 멀고 가까움, 험준함과 평탄함, 넓음과 좁음, 살 곳과 죽을 곳을 이르는 지리지만 세밀히 들여다보면 소위 ‘강남’으로 표현되는 ‘웰빙 보수주의 영토’에 안주하면서 마치 이 땅의 시민 모두가 거길 선망하는(?) 것으로 이끌려 한 보수정권의 무책임과 부패와 무능을 떠올릴 수 있다. 네 번째 ‘장’은 믿음(信)과 용기(勇), 지혜(智)와 어짊(仁), 엄격(嚴)을 가리키는 것으로 장수의 오덕(五德)이라고 하는 인모(人謀)의 문제다. 후보자 개인보다 이번 선거를 지휘한 지도부에 비중을 둬야겠으나 보수의 버팀목인 교회나 재벌 등 기득권 주류 모두를 살펴봐야 한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모습에 대해 야당은 어떻게 호도하려 했고, 대법원이나 재벌들이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 살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그들에게 무슨 덕이 있었는가? 엄정해야 할 재판을 거래하고 온갖 갑질을 자행하면서 불의에 편승한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기득권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제 세력 모두가 오악(五惡)에 젖어 있었다면 과언일까.

 다섯 번째 ‘법’은 동원 체제, 주력 부대의 보급 물자 운용으로 군법이자 시스템의 문제다. 이번 선거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가 아니라 보수 정당과 세력에 대한 철저한 심판의 의미였다는 해석이 반증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았음에도 보수의 맏형 격인 자유한국당은 합리적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강경 일변도 대여 투쟁만 벌였다.

 일찍이 손자가 말했다. "나는 이런 것에 의거하여 승패를 알 수 있다(知勝負矣)."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상식적인 일을 도외시 않는 것이 경쟁에 임하는 자세다.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도 이 ‘오사(五事)’를 점검해야 하는데 제1야당을 비롯한 공당이 선거전에 임하면서 무얼 했는가 말이다. 자초한 패배다. 촛불집회 이후 우리가 확인했듯 지금 시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새로운 가치와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부의 편중보다는 공정한 분배, 복지를 통한 삶의 질 향상, 지방 분권,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건강한 토론을 통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국회를 목마르게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선거는 새로운 체제의 출발을 알리고 있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보수가 궤멸됐다고 하지만 언제 이번 선거의 승자인 더불어민주당이 시민의 갈망을 배반할지 모른다.

 반칙과 특권이 난무한 불평등 사회로 귀결된 ‘87년 체제’의 재판이 될 우려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시민의 날선 눈길이 언제 6·13 선거 결과에 대해 탄식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점이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시민들은 그것으로 인해 경제적 효과의 평등한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좌절과 질책으로 바뀔지 모른다. 아무튼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고 어떤 형태로 우리 눈앞에 등장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보수 재편에 대한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 가치와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환골탈태의 기대가 있다. 진보와 보수가 건전하게 경쟁해야 나라의 장래가 밝아진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모두가 겸허하게 성찰해야 한다. 도천지장법의 의미를.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