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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자화상

정겸 시인/경기시인협회이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6월 22일 금요일 제11면
정겸 시인.jpg
▲ 정겸 시인

멧비둘기와 꾀꼬리가 음파를 타듯 정답게 노래하고 있다. 모처럼만에 느껴보는 평화롭고 한가한 6월 오후다. 막을 내린 지방선거의 열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햇볕은 삼복더위 못지 않게 덥다. 구순을 눈앞에 둔 어머니는 환갑 넘은 자식이 참비름나물을 좋아한다고 텃밭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그 정도의 세월을 겪었으면 지금까지 행한 자식의 행동이 효자인지 불효자인지 판가름 났을 법 한데 별로 효자 노릇도 못한 자식을 위해 내리쬐는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잡풀 무성한 고추 밭에서 참비름을 뜯는다. 전통시장에 가면 몇 푼 안주고 살 수 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만류를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호미자루를 거머쥐고 나물 캐는데 여념이 없다. 세월을 햇볕에 말린 지 한 세기가 다 돼 가는데 자식이 뭐라고, 왜 그렇게 희생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까지 모르니 나는 아마도 철이 덜 든 것 같다.

 우리나라의 오랜 풍습을 보면 집안에 사위가 오면 닭을 잡는다. 그것도 종자로 아끼는 씨암탉을 잡는다. 사위는 집안에서 가장 어렵고 귀한 백년손님이요 백년지객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시골에서 이런 풍습을 체험하고 자란 세대이다. 당시 어머니는 고모부가 오면 영락없이 닭을 잡았다. 여자로서 살생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것도 항상 집 근처에서 알짱대며 알을 낳아주고 하루의 반찬거리를 공급해주는 닭, 두 눈을 멀뚱거리며 다니는 순하디 순한 닭을 잡을 때마다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귀한 손님에 대한 예우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두 눈을 질끈 감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맷돌을 올려놓았다. 마지막까지 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날갯짓하며 발버둥치는 닭을 보며 어머니는 애써 외면했다. 여자의 신분으로 닭 한 마리 잡기가 참으로 어려웠을 법한데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오늘날까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갑자기 한혜영 시인의 ‘뱀 잡는 여자’라는 시 한 편이 생각난다. ‘혼자 있는 저녁 무렵 뱀이 들어왔다 베란다에/자살테러범처럼 독(毒)을 품고 잠입한 독사…’

 이렇게 시작하는 시구(詩句)는 결국 본능적으로 삽자루를 움켜잡고 뱀을 때려잡는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가족을 위한 희생정신이 오롯이 내재돼 있다. 독을 가득 품은 냉혈동물인 뱀을 잡다니 정말 그 기운은 어디서 나왔는지 불가사의하다. 남자들조차 혐오스러운 뱀을 잡는 것은 꺼려한다.

 그러나 가정에 침입한 뱀을 식솔들의 안위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여성이라는 연약한 몸으로 제 한 몸 아끼지 않으며 뱀을 잡는 모습은 어쩌면 눈물이 나도록 처절한 것이다. 바퀴벌레만 보아도 소스라쳐 도망을 쳤던 여렸던 아가씨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무사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뱀 잡는 여자’는 중년 여성이 품고 있던 숙명적 모성애의 강인함을 엿 볼 수 있는 것이다. 삶은 긴장과 전쟁이다. 그리고 생존의 현장이며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혼돈의 싸움터라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는 한 마리의 뱀을 잡으려고 일생을 바쳤는지도 모른다. 그 뱀과 싸움을 하는 동안 청춘도 지나가고 세상의 멋을 한껏 뽐낼 나이에 희락(喜樂)조차 느끼지 못한 채, 젊음의 시간은 이미 멀리 도망가 버린 것이다.

 삶에 있어 나이를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이를 먹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생각된다.

특히 우리의 가슴을 울림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끝도 없이 베푸는 휴머니즘적 철학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는 나이가 필요 없다. 병환에 시달리면서도 제 한 몸 챙기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자식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저승에 가서라도 오로지 자식 걱정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주었을까? 반성해 본다. 도심과 고향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는 지금, 지난 한 달 동안 어머니를 몇 번이나 찾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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