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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전오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자연생태분야에 입문한 지 30년이 지나가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선 지 10여 년이 넘어서는데 마음 한 켠에 늘 걸리는 것은 연구나 말이 아닌 실천에 있어 과연 친환경적이며, 친자연적인 삶을 사느냐이다. 집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 못한다고 아이들에게조차 타박을 받고 대형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물건을 탐욕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내가 이래도 되나라고 되뇌이지만 생활이 별반 바뀌지는 않고 있다. 그래도 올해엔 이것만은 한 가지 실천해 보자라고 한 것이 걸어서 출근하기이다. 예전에도 걸어서 출근하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무슨 무슨 핑계가 생겨 다시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게 됐는데 그 핑계는 다음과 같다.

 연구자의 생활이 급하게 처리할 일이 많다기보다는 꾸준히 자료를 찾고,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보니 늦은 시간까지 연구실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침 출근 때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저녁에 집에 갈 방법이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어두운 밤에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일을 몇 번 경험해보면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칼퇴근하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칼퇴근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직장도 많지 않은데다 겨울에는 칼퇴근해도 이미 캄캄한 밤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잦은 출장이다. 각종 회의와 현장답사가 많은데 차가 없으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차 없이 시청회의에 한번 가려면 하루종일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하면 저성과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 외에도 승용차를 이용하면 사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데 비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기 때문에 이 또한 쉬운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올해는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 이번 시도는 성공할 것만 같다. 첫 번째 성공할 이유는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해도 집 근처 주민자치센터까지 태워다 주는 마을버스(지선버스)가 신설됐다. 버스가 자주 오진 않지만 인천 버스안내 앱을 깔면 버스 오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어 여유 있게 버스를 탈 수 있다. 두 번째 성공할 이유는 인천지하철 2호선이 생겨 시청이나 타 지역으로 출장가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세 번째 이유는 마음의 문제다. 이슬비 정도 오는 날이나 황사, 미세먼지가 있는 날은 우산이나 마스크를 이용하는 의지가 필요해 보인다.

 어느 날 아침에 40∼50분 걸어서 출근한 후 뿌듯한 마음에 만보계를 보니 5천 보가량 걸었다. 사람들이 만보, 만보 하길래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걸어서 출근하고 점심 식사 후 좀 걷고, 일하면서 왔다 갔다를 많이 해야 만보가 가능하다. 만보가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도시인들이 정말로 많이 걷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동차를 타고 출근해서 종일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집으로 돌아간 어떤 날은 2천, 3천 보에 불과하다.

 이런 생활이 하루하루 누적되면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오래는 산다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걸어서 출근하면서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전화를 연신 꺼내 사진을 찍는다. 벌써 수백 장을 찍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면 시간과 날짜가 나온다. 1년간 출근하면서 풍경을 찍을 생각이다. 심곡천을 따라 출근하는데 심곡천의 사계를 찍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갈색일 때 걸어서 출근하기 시작해서 벚꽃이 피고 졌다. 이팝나무 가로수가 늦게 꽃을 피운다. 어떤 나무와 어떤 풀이 먼저 꽃을 피우는지 먼저 잎을 내는지 휴대전환 속 카메라에 담기고 있다. 거칠지만 1년을 사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휴대전화 속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이른 봄 어느 아침에 어떤 새들이 짝짓기를 했고 어느 날엔가 제비가 곡예비행을 시작했다. 자연을 느끼며, 즐기는 40∼50분의 출근시간이 점점 소중해지고 있다. 아침엔 걷고 낮에는 지하철로 출장을 다니고 저녁에는 마을버스로 퇴근하는 틀이 갖춰진 듯하다. 이번엔 꼭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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