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내달 1일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상시 노동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감독이나 진정 등으로 노동시간 위반이 확인될 경우 최장 6개월의 시정 기간을 부여할 것’이라고 20일 밝혔다.

이로써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기업의 사업주들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사법처리(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늘 그렇듯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면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이는 또 다른 문제로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도 예외는 아니다. 시행이 가까워지자 혼란에 빠진 버스 업계에선 이직대란과 노선감소의 조짐이 나타나고, 중견 제조업체는 해외 생산설비를 확대하는 식의 예상 밖 대응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데다 경기가 나빠져도 해고를 쉽게 할 수 없는 여건에서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치자 기업들이 체하며 판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한꺼번에 급하게 먹으면 탈 나는 게 당연하다.

 전문성·합리성이 수반돼야 할 경제정책이 정치적 의지에 의해 획일적으로 추진되는 점도 큰 문제다. 이번 경우도 실제 현장에서 근로시간이 갖는 의미와 범주를 정확히 갈파하지 못한 채 정책이 결정된 듯하다. 공장이나 매장처럼 ‘업무성과와 근로시간 간 상관관계’가 높은 부문은 계절적 수요 또는 주문량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조정하면 된다. 하지만 ‘양이 아닌 질에 의해 성과가 결정’되는 영업이나 R&D, 4차산업 영역은 근로시간으로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결론적으로 국민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제공하겠다는 좋은 취지는 정책 추진의 성급함과 아마추어리즘이 결합하며 더 안 좋은 상황으로 전개될 것 같다. ‘전기료를 올리고 환경을 파괴시키는 탈원전 추진’이나 ‘고용을 감소시키고 저소득층 분배를 악화시키는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도 같은 이치다. 근로시간 단축도 결국은 ‘근로자의 임금을 줄어들게 하고, 일자리를 취약하게 만들고, 경영 여건을 더욱 어렵게 하는 나쁜 정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다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저녁밥조차 못 먹는 국민만 양산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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