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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한국시조문학진흥회 명예이사장
현대는 익명사회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경우를 말한다. 특히 도시 아파트 생활은 승강기에서 마주치는 이웃과도 쉽사리 아는 체 않는다. 자주 마주치면서도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 그렇다고 하여 자기 이름이 영영 숨겨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시대다. 태어나 이름을 지어 등록을 하는 순간부터 전자체제에 종속되고, 누군가에 의해 감시를 받게 된다. 익명은 정녕 익명이 아니다. 건물마다 거리마다 달려 있는 CCTV카메라 등등 주변은 촘촘한 감시망의 연속이다. 온통 팬옵티시즘(Panopticism) 세상이다. 지구별은 거대한 ‘원형감옥’이다. 불행하게도 약 2세기 전 영국 법학자 제러미 벤덤이 고안한 그 말이 오늘날 신의 영역을 터치하고 있다. 감시받는다는 측면만을 부각할 때 감옥이라 했지만, 범죄를 예방하는 측면으로 보면 좋은 세상이라 하겠다.

 이처럼 실상은 익명이 아니라 할지라도 대개는 부지 중에 익명이라 여기고 살아간다. 그것이 우선 편안하다. 사람은 누구나 아픈 과거가 있을 수 있다. 청춘시절 불의의 실수나 일상의 소소한 잘못이 없을 수 없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익명은 이들로부터 자유롭다. 익명으로 사는 재미의 하나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단순히 익명 속 자기안락에만 머무르지 않는 사례도 있다. 자기 이름이 알려지든 말든 묵묵히 음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무료 침·뜸으로 남의 건강을 북돋워주면서도 자녀 결혼 때는 조용히 가족끼리 치른 경우이다. 때때로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고 성금이나 쌀과 같은 성품을 기부하는 경우를 뉴스로 접한다. 이런 분들 때문에 원형감옥은 무너진다. 다시 익명을 풀어본다.

 1960, 70년대만 해도 지방에 따라 집집마다 택호가 있었다. 요사이 동창들이 만날 때 전직 직함이나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어딘가 어색할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산강’이란 별명이 있다. 산과 강을 좋아해 그리 되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산언덕이란 뜻의 ‘산강(山堈)’으로 쓰고 있다. 이에는 ‘혼자서 산과 강을 다 가지려 하느냐’는 후배 문인의 취중 항변이 있었다. 본명보다 호로 불리는 것이 기분이 괜찮은 편이다. 또한 내가 ‘호’를 지어준 사람들도 그렇게 불리며 쉬이 쓰고 있다. ‘택호’는 그전의 벼슬이름 또는 처가나 본인의 고향 이름 따위를 붙여 부르던 말이다.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이 서로 택호를 사용하여 ‘○○어른’, ‘○○댁’이라고 부르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호칭인 것 같다. 익명은 결국 무명으로 이어지고, 무명에서는 다시 서민이 연상된다. TV 프로 중에 자연인이니 도인이니 하는 분들은 이미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었으니 익명이라기 곤란하다.

 나는 한때까지 한 사람이 권력과 명예와 부를 다 가지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아왔다. 그런데 작금 고위직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권력과 부와 명예가 부적정하게 쏠려 있는 경우는 일반 서민의 준법 생활과 달라 서글프다. 차제에, 집권 정부여당은 얼마 전의 압승 선거 결과에 안주하면서 남북화해에만 치중할 것인가. 올 들어 인근 일반식당가 거의가 식대를 올렸고, 심지어 밥 한 공기 추가에 2천 원 하는 데에는 뒤끝이 개운치 않았다. 피부로 부딪치는 서민의 주름살과 아울러 남남갈등도 풀어주기를 기대해본다. 잘못은 처벌해야 하지만 때론 용서하는 것이 더 큰 처벌일 수 있다. 멘붕에 빠진 보수세력을 한 축으로 끌어 안아야만 더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나는 근방에 익명으로 사는 지금이 편안하다. 디오게네스의 무욕이 아니어도 좋다. 소확행, 이 나라 헌법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아래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다. 자유로운 잡초를 그린다. 단시조 한 수에 실어본다.

<민초>

드러내지 않으면서 나는 풀은 자유롭다

예제 온통 풀빛 내음 싱그러이 피어올라

풀죽은 다른 풀마저 애써 감싸 도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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