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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섭 문학박사
정약용 선생의 대표적인 호인 ‘다산’은 강진 유배 시절 다산초당(茶山草堂)에 거처하던 때 불려졌다. 정약용 선생은 자신이 거처하던 지명을 별호로 사용했는데, 다산이란 호는 다산초당 시절(1808~1818)에만 썼고 이후엔 쓰지 않았다. 이런 현실과 달리 다산이란 별호가 지금까지 대중에 널리 퍼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를 세상에 소개하고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사람은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1772~1839)선생이다.

 이재의는 양근(陽根)에 살고 있던 노론계 학자였다. 1814년 영암군수로 근무하고 있던 아들 집에 머물 당시 강진에 유배와 있던 정약용을 알게 된다. 둘은 강진의 만덕사(萬德寺)에서 만났다. 당파는 달랐지만 격의 없이 학문적 교류를 하던 관계였다. 이재의는 주변의 노론 학자들에게 정약용 선생의 처지와 학술 성과를 알리면서 선생을 ‘정다산(丁茶山)’으로 지칭했다.

 이렇게 다산이라는 호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930년대, 한국 실학 연구 1세대라 할 수 있는 정인보, 신채호, 최익한 선생 등이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진행한 ‘정약용 서세 100주년 학술사업’ 등을 거치면서 다산이라는 호는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다.

 별호라는 것이 원래 다른 사람들이 불러주는 것이고 보면, ‘다산’이란 호는 정약용 선생 본인의 의지와 달리 별호의 목적에 잘 맞았다고 하겠다.

 정약용 선생의 별호(別號)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까지 20여 가지가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마마를 앓고 나서 눈썹에 흉터로 남은 것으로 인해 ‘삼미’라는 호를 짓고 10세 때까지의 문집을 엮어 ‘삼미집(三眉集)’이라고 했다. 서울 명동에 살 때엔 ‘죽란산인(竹欄散人)’이란 호를 사용했다. 유배 초기에는 탁옹, 여유당거사(與猶堂居士), 탁피족인(皮族人), 여유병옹(與猶病翁) 등을 사용했다. 특히 ‘탁옹’과 ‘탁피족인’ 등은 강진에서도 다산초당으로 옮기기 전까지 사용했는데, 정약용 선생이 직접 일구던 채마 밭 일부에 대나무를 심고 거친 세파에도 변하지 않는 그 굳센 절개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고향 마현과 관련 있는 별호는 가장 많이 사용한 열수 이외에도 철마산인(鐵馬山人), 철마산초(鐵馬山樵), 철마초부(鐵馬樵夫) 등이 있다. 정약용 선생의 생가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산이 철마산이다. 이 산에서 손바닥 크기의 철마가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있는 마을 이름이 마현 또는 마재라 불리는 이유이다. 철마산의 이름과 마현·마재라는 마을 이름은 정약용 선생이 지었고 지금까지 불려진다.(철마변(鐵馬辨) 참조)

 정약용 선생은 해배돼 고향에 돌아온 뒤로는 열수(洌水)를 사용했다. 다산이 장소와 관련 있듯이 열수 또한 장소를 나타낸다. 이와 관련한 호가 열수옹(洌水翁), 열수산인(洌水山人), 열로(洌老), 열초(洌樵) 등이다. 모두 선생의 고향을 나타낸다. 정약용 선생은 열수라는 말을 자신의 문집인 ‘여유당집’의 매 책마다 맨 앞에 썼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열수라고 표기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정약용 선생은 자신을 어떻게 불러주길 바랐을까?

 회갑을 맞이한 정약용 선생은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지었는데, 여기서 자신의 호를 ‘사암(俟菴)’이라 했다. ‘전적에 온 힘을 다 쏟아 백 세 이후를 기다리고자 한다(竭力典籍內 以俟百世後)’라는 구절 등에서 보듯이,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자 자신의 학문적·인간적 자부심이 담겨 있는 호이다.

 우리는 지금 정약용 선생과 그 정신을 다시 찾고 있다. 선생이 살아나 ‘2018 남양주 정약용의 해’를 대한다면 어떨까? 정약용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새로운 정약용을 기록하는 남양주를 본다면 ‘사암의 꿈’을 이뤘다 흐뭇하게 여기시리라 믿는다. ‘사암 정약용’의 꿈은 이뤄졌지만, 다산 정약용으로 더 알려졌으니 선생께서는 마재마을에 누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사암이나 열수로 불려야 하는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다산 정약용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열수 정약용, 얼쑤 남양주’를 슬로건으로 하면 어떨지 ‘여유(與猶)’스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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