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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아들은 아버지가 매일 밤 노트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집안 식구 어느 누구도 아버지가 무엇을 적는지를 몰랐습니다. 돌아가신 다음에야 아들은 노트를 열어볼 수 있었습니다. 노트에는 가족들 이름과 아버지 친구들의 이름,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이름만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궁금해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말해 줍니다.

"아버지는 매일 밤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가며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리셨단다."

"이 사람들이 누군데요?"

"아버지에게 상처를 안긴 사람들이란다. 아버지는 매일 밤 그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올리신 거야."

참 대단한 아버지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안긴 사람들을 원망하고 분노하기는커녕 용서를 하다니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느낌」이란 책에 소개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저는 책 속의 아버지처럼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 같습니다. 그래서 용서란 고슴도치를 껴안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해야겠지요. 용서하지 않으면 그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만 망가지고 말 겁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유명한 의사였지만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자신이 묻힐 공원묘지 몇 평도 없었던 참으로 청빈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그의 삶은 가난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일이었습니다. 병원비가 없어서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의 치료비를 자신의 월급으로 내어주곤 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행」이란 책에 장 박사가 도둑까지도 용서한 일화가 가슴을 울립니다. 어두운 밤, 장박사 사택 쪽으로 그림자 하나가 보입니다. 마침 경비원이 그것을 발견하고 도둑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경비원이 되기 전 그는 오랫동안 골수염으로 고생했는데, 돈이 없어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장 박사의 사택과 병원 사이에 누워있으면 돈이 없어도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도 그렇게 했습니다. 결국 장 박사의 눈에 띄어 수술을 받아 완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된 장 박사는 허약한 그가 수술 후에 힘든 일을 하면 안 된다면서 병원 경비원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경비원은 장 박사로부터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자기 손으로 도둑을 잡고 싶었습니다. 도둑이 서재로 들어간 것을 알고는 발소리를 죽인 채 서재 창문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장 박사가 도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요? 경비원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도둑은 보자기에다 서재의 책들을 싸려고 하다가 장 박사에게 들켰나 봅니다. "그대가 그 책들을 가져가봐야 폐지 값밖에 더 받겠소? 그러나 내게는 아주 소중한 것이오. 내가 대신 그 책값을 쳐주리다. 무거운 책보다는 돈이 더 낫지 않겠소?"

그러자 도둑은 머리를 조아리고 죽을죄를 졌다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장 박사는 도둑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돈 가져가세요. 그리고 바르게 살아볼 마음이 생기면 다시 찾아오시오."

어때요, 참 대단한 분이지요? 아마 그 도둑은 그 이후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 겁니다. 용서 받아본 사람이 용서할 줄도 알게 되니까요. 용서는 ‘어떤 원망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군가를 원망하면 할수록 ‘나’ 자신의 인격은 파괴되고 맙니다. 그래서 나의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내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저도 그래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제가 상처를 준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제 아내, 제 자식들, 제 친구들, 제 동료들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들이 용서해주기 전에 그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오늘 아침은 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아침입니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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