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창의도시 이천시에는 전통을 보존하며 계승하고 있는 대표적인 민속놀이가 있다. 정월대보름이나 팔월 추석에 마을 청년들이 거북이로 가장, 마을 가가호호를 방문해 대동놀이로 펼쳐졌던 ‘이천 거북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풍요로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확의 계절 가을에 다채로운 마을 축제를 개최했다.

 거북놀이는 경기도 남부지방과 충청도 일부 지역에서 전래돼 오다 1960년대 근대화와 함께 사라졌다가 1972년 이천시 대월면을 중심으로 복원돼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이천 거북놀이’는 진행 과정과 사용되는 기물의 형태가 비교적 잘 보존돼 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전승놀이로서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아 201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50호로 지정돼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편집자 주>

# 어깨춤이 절로 나는 ‘이천거북놀이’

 "동네 사람들."

 "네!"

 "이 거북이가 어떤 거북이지요?"

 "복 거북이요."

 풍물이 시작되고 마을 사람들이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추면서 막이 오른다.

 "우리 백석천석만석 거북이가 동해바다 거친 파도를 거치고 태백산 높은 봉우리를 건너서 가가호호 백석천석만석만큼 복을 빌어주기 위해 왔으니 자, 거북아! 우리 이 마을에 복이나 빌어주고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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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주민들이 이천거북놀이 중 ‘길놀이’ 등을 재현하고 있다.
 질라아비의 구성진 소리가 마을 어귀에 울려 퍼지고, 흥겨운 풍물가락에 맞춰 자연스러운 춤사위로 흥을 돋우며 길놀이로 ‘이천 거북놀이’의 시작을 알린다.

 길 군악으로 연희자 일동이 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우선 마을 수호신인 장승에게 치성을 드리는 장승굿과 마을 공동우물이 항상 맑고 깨끗한 물이 샘솟기를 바라는 우물굿을 벌이고, 마을의 넓은 공터에서 한바탕 놀이마당과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펼치며 신명을 돋운다.

 이어 마을 내 가가호호를 방문해 만복과 재물이 대문을 통해 들어오기를 소원하는 문굿, 부뚜막 위에 떡과 술을 놓고 치성을 드리는 조왕굿, 대청의 대들보 위에 집을 수호하며 복도 주고 액운도 가져다주는 신성스러운 존재에게 고사를 지내는 대청굿 등으로 구성된다.

 굿판에서는 소고춤, 허튼춤, 꼽추춤, 무동춤 등을 추며 흥을 돋우며 태평성대, 홍수풀이, 농사풀이, 달거리 등의 비나리를 통해 우주의 창조와 재액의 풀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덕담이 곁들여진다.

 춤들은 한국 춤의 전형적인 형태로 투박하지만 단순미를 갖춘 것으로, 자연미에 순응하는 내면적인 미의식을 표현하고 서민들의 애환을 익살과 해학으로 풍자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당놀이가 펼쳐지는데, 1년 농사를 무사히 마치고 풍요함 속에 명절을 맞는 즐거움과 거북놀이의 과정을 통해 집안의 복을 빌고 액운을 막았다는 안도감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자유롭게 춤추며 흥겹게 어울려 논다.

 ‘이천 거북놀이’는 장수의 동물 거북이의 영험을 빌려 수숫잎으로 거북이 형상을 만들어 마을을 돌며 풍년과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했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복을 빌어주는 전통 민속놀이로 준비 과정부터 실제 놀이에 이르기까지 마을 주민 전체가 참여한다는 점에서 대동놀이의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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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굿
# 이천거북놀이보존회

 이천거북놀이보존회는 4살 어린이부터 일흔이 넘은 노인까지 60여 명의 다양한 회원들로 구성된 민간단체로, 이천시 대표 축제 공연과 각종 해외 공연, 광복 70주년 국민대화합축제, 안동국제 탈춤페스티벌, 국립민속박물관 초청공연, 안성 바우덕이축제 공연 등을 통해 보급에 앞장서고 토론회,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이천 거북놀이’ 전승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보존회원들의 노력만으로는 ‘이천 거북놀이’의 보존과 문화콘텐츠 개발이 어렵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 과거 유물보다는 전승돼야 놀이로 육성

 지난해 12월 이천문화원은 이천지역에 전해져 내려온 농악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사업 수행 방향 등을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이천 자채농요, 농악 시연 및 전승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변진섭(무형문화재 경기도 도당굿 전수교육조교)박사는 "경기도에 농악이 존재했고, 현재도 전승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단절과 약화의 시기를 지나 복원과 융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며 "시대가 다르고 사회구조가 바뀌었다. 이 시대와 사회에는 과거 농악과 같은 것이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일의 고통을 덜어주고 능률을 올리는, 공동체 내의 나쁜 존재를 쫓고 서로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모두가 함께 힘을 쓸 때 과연 무엇이 이끌고 있는지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농악은 과거의 유물이고 현재의 어떤 무엇보다 격이 낮다고 할 수 있는가? 때문에 농악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모양이 지금과 이물지지 않게 어울리도록 바뀌어야 하며, 그렇게 되면 무척 유용하리라고 판단된다"고 발전 방안을 제시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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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왕굿
 거북놀이보존회 박연하 사무국장은 "이천의 풍물은 농업적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형성된 공동체 문화의 특성을 지니고 마을단위로 형성된 각종 제의나 세시풍속, 민속놀이가 전승돼 왔다. 그것들 대부분이 민속적 양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이천만의 독특한 특징과 지역성이 담긴 고유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이천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개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천문화원 관계자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전통을 찾아내고 복원·계승·보존하는 일이야말로 시급히 추진돼야 할 사업"이라며 "이천시는 유네스코 창의도시로서 민속예술도시의 자긍심을 후손들에게 남겨 줄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천만의 특징을 살려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화합과 소통의 장으로 만들 수 있도록 각 읍·면별로 지도자를 양성하고,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거북놀이보존회 심덕구 회장은 "거북놀이는 동네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과 내년 풍년농사를 기원하고 주민 간 화합과 소통, 배려의 자리를 만드는 세시풍속의 전통문화"라며 "악기, 무용, 소리 등을 집합한 서민종합예술은 외국의 오페라와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는 문화"라고 자평했다.

 또한 "지금까지 보존회가 이어져 온 것은 회원들이 각자의 생계를 위한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공연 시기에 불만 없이 참여했기 때문"이라며 "이천시와 시민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나 아직도 어려운 실정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회원들과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천시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립 타당성조사 용역을 완료하고 ‘무형문화재 보존 및 진흥에 관한 법률’, ‘문화재 보호법’에 근거해 전수교육관(국비 50%, 시비 50%)을 건립할 예정이다.

 이천=신용백 기자 syb@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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