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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수 대림대 교수
최근 자동차의 부품 수는 약 3만 개에 이른다.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과학의 총합체라 할 정도로 모든 기술이 모였다고 할 수 있다. 환경과 안전, 편리성 등 요구 조건이 늘면서 더욱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동작되다 보니 이제 자동차는 사용하기는 편하지만 고장 등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 됐다. 문제는 이렇게 복잡한 자동차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운영상 문제점을 얼마나 메이커가 잘 대처해 주는가도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차 구입 후 문제가 발생하면 큰 비용에 안성맞춤 서비스가 기본으로 작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따라 ‘봉’이나 ‘마루타’로 작용한다.

 우리나라는 수십 년간 자동차 기술과 산업 발전은 선진국이 부러워 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워낙 압축된 발전을 하다 보니 절름발이 상태로 부진한 발전을 이룬 부분이 바로 자동차문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서비스 부분은 아직도 후진국의 전형이라 할 정도로 왜곡된 부분이 많다. 주변에 신차에 문제가 발생해 고통스럽게 싸우는 소비자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고 아예 포기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교환이나 환불을 요청해 성공한 케이스는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소비자가 메이커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능력도 없고 특히 법적 제도적 보호가 안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년에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자동차 교환 환불 프로그램인 ‘레몬법’을 벤치마킹해 한국식 레몬법이 제정됐고 내년에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필자는 이 법이 제정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절름발이 법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아무 의미도 없고 실질적으로 소비자에게 도움도 안되는 유명무실한 허울 좋은 그럴듯한 법이라 지칭했다. 미국의 레몬법이 나오고 실질적 효력이 작용하는 이유는 몇 번의 고장이나 기간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적 배경과 관련법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형 레몬법이 실질적인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할까?

 두 가지가 확실히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징벌적 보상제이다. 미국은 메이커 등에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를 위한 보상금뿐만 아니라 벌칙 조항에 따른 벌금이 천문학적으로 부과돼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안전 등 리콜이나 소비자를 위한 징벌적 보상제는 국내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메이커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도 없고 문제가 커지면 유명무실한 벌금 정도만 간단하게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를 판단할 전문가 집단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지 않아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두 번째로 소비자 측면에서 정부의 변화와 관련 제도 마련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나라는 운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밝혀야 하는 구조이다. 문외한이 그 복잡한 자동차 결함을 밝히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잘못한 부분을 피해자 가족이 밝히라는 것과 같다. 이러다 보니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물론이고 각종 신차에 문제가 발생해도 정비소에 계속 오라는 연락만 하고 굳이 나서서 자동차 교환이나 환불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순히 자동차 산업만을 보고 발전만 하면 되는 것이고 소비자 보호나 배려는 버려도 되는 것일까? 관련 소비자 단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부나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진정한 선진국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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