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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2018년 07월 03일 화요일 제10면

무덥고 습한 여름이다.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면 형광등 아래에서는 안 보였던 밤의 불청객이 찾아온다. 흡혈 모기다. 아내는 일찌감치 원터치 침대 모기장으로 암컷 모기와의 단절을 선택했다. 문제 해결에 신속한 아내다운 처사다. 반면 고통에 둔감하고 갑갑한 것을 싫어하는 나는 올 여름도 모기와 독대(獨對)하기로 했다. 한두 번 겪는 흡혈도 아니고 암컷이 알을 산란한 고인 물을 오밤중에 마신 적도 있었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으니 ‘지피지기(知彼知己)’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또 단절을 통한 회피와 무시보다는 대면과 강제를 통해 세상사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었다. 강제는 살충제를 난사해 암컷 모기를 억지로 굴종시킨다는 의미다. 벽과 천장에 새로 하얗게 도배된 벽지도 녀석에게는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녀석의 피를 향한 갈구와 집요한 번식력, 살충제의 내성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인간이라고 믿었다.

 여름은 깊어가고 방안에 암운이 드리우는 횟수가 늘어났다. 녀석과의 대면을 회피하지 않은 나의 팔과 다리는 자상(刺傷)으로 덮여 갔다. 아내의 팔과 다리는 상흔 없이 깨끗했다. 측은지심에 아내는 약국에서 물 파스 2개를 추가로 구입해 나에게 선물했다. 모기장을 구입할 것도 권유했다. 나는 물 파스만 받아 놓고 이번에도 모기장 구입은 염두하지 않았다. 여름이 시작된 지 60일이 지났다. 새벽 2∼3시 무의식의 영역에서 한창 도취돼 있을 때 녀석은 정례적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불을 켜고 녀석을 잡으려고 하면 흰색 벽지에 의당 있어야 할 까만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냄새와 열을 감지하는 촉수와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입술뿐만 아니라 명암을 구별할 수 있는 겹눈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은 침대와 벽 틈새, 옷걸이에 걸린 옷의 주름 부위, 창과 커튼 사이에 몸을 숨겼다. 우리 집 구조는 다 꿰고 있었다. 한 번의 흡혈은 성공했으니 이제 한두 번만 피를 더 빨면 뱃속 수정란을 키워 150여 마리의 알을 낳을 수 있다. 80일을 버텼던 나의 무모함도 녀석의 집요함에 백기를 들었다. 태풍이 북상하는 7월 1일 나는 모기장을 구입했다. 모기와 나 사이에는 그물처럼 촘촘한 모기장 천이 놓였다. 그 후로 더 이상의 대면은 없었다. 녀석은 면회 신청만 하고 돌아갔고 세상에서 몸을 숨긴 나는 단절의 효용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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