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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정도(定道) 천년, 경제대국을 꿈꾸었던 정조대왕을 생각한다

권영득 복지행정학 박사/전 삼성경제연구소 생활경제 교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7월 03일 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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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득 복지행정학 박사

경기도가 정도한 이래 일천 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수도 한양을 감싸고 있는 한반도의 중심이자 문물의 중심지로 그 역할을 다해오고 있는 경기 정도 일천 년을 회상하면서 조선의 22대 정조대왕을 다시 생각한다. 정조는 비운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융릉에 모시고 화성을 건설해 새로운 천 년 왕국의 꿈을 꾸었던 개혁군주였다.

 비록 꿈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국정을 쇄신해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경제대국을 그리며 외국의 침략을 허용하지 않는 강한 나라를 건설하려 했던 그 정신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탕평책을 비롯해 정조의 공적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지만, 나는 백성을 잘 살게 하며 국가를 부강하게 하려던 경제적 관점에 주목한다. 정조는 인류의 경제 교과서라고 평가받는 사마천의 「화식전(貨殖傳)」을 알기 쉽게 해석해 널리 보급함으로써 경제 마인드를 함양하고 ‘빈부는 하늘이 내린 것’이라고 믿고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고 있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서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용기와 구체적 방법을 알려 주려고 노력했다.

 화식전은 나라가 자유로운 시장을 보장해 모든 백성들이 시장을 통해 재화를 불려 나가는 선 순환 이치를 밝혀 제시한 놀라운 기록이다. 사마천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재화가 소수에게 집중되면 민심은 흩어지고 재화가 다중에게 흩어지면 민심의 지지를 받는다는 뜻의 ‘재취즉민산(財聚則民散) 재산즉민취(財散則民聚)’는 통치의 황금률이 있었다. 재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통치의 정당성과 영속성으로 이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재물은 집중성과 확산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일단 재물을 가진 사람이 더 크게 불릴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렇기 때문에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라는 말이 생겨났다.

 실제로 재화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팔자소관이려니 하고 살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왕조를 무너뜨리는 엄청난 에너지로 폭발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 지금 우리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가 문제다.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국난을 겪은 지가 20년이 지나고 명목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도달했는데 양극화, 실업, 자살, 중산층 몰락과 같은 어두운 단어들이 우리 사회를 유령처럼 지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는 것은 분배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가진 사람들의 재화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예사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성장을 통해 국민들의 경제생활을 개선할 수 있다는 샤워 효과, 국민들의 소득을 먼저 보장하면 결국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수 효과를 비롯해 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재화를 관리하지 못하면 정치의 지지기반을 잃고 만다는 것과 부자가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데 힘쓰지 않으면 결국 가진 것을 잃고 만다는 성인들의 경고를 잘 음미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조는 초계문신으로 언제나 사랑하고 아끼면서 미래의 영의정이라고 점 찍어 놓았던 정약용에게 화식전을 해석해 널리 읽혀지도록 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선비들도 화식전을 읽고 외우며 경제 현장에 직접 접목하려 노력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돈을 모으는 것은 상업이 으뜸이기 때문에 집안에서 수를 놓지 말고 시장에 나가서 장사를 하라는 사마천의 주장이 이 당시의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정조는 수원 화성을 건축할 때 정약용으로 하여금 기중기를 만들어 공기를 단축하게 하였고, 팔도의 장정에게 부역을 시키면 된다는 신하들의 건의를 물리치고 가장 합당한 노임을 쳐 주도록 했다.

 힘이 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기본임금을 계산하고 기력이 넘치는 장정들에게는 초과임금을 쳐 주어 밤에도 스스로 일하게 했으며, 화성의 기초석에 인부들의 이름을 새겨 천년 후에도 기억하게 함으로써 보람과 긍지를 가지게 했다. 시대를 앞질렀던 정조의 구상도 49세를 일기로 승하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신하들이 붕당을 이루어 왕권을 농락하고 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함으로써 백성들은 가렴주구의 도탄에 빠졌고, 결국 조선은 정조 이후 5대째에 문을 닫고 말았다.

수원화성과 융릉 건릉을 보면서 천년을 꿈꾸었던 정조의 기상이 경기도를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조가 사랑했던 경제 교화서인 화식전의 가치가 경기도를 통해 널리 확산되길 기대한다. 경기는 대한민국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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