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년 남자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건강 관련 잡지다. ‘거리별 청각 능력에 따른 아내의 건강 상태’라는 제목이 관심을 끈다. 내용은 이랬다. 100m 밖에서 아내를 불렀을 때 대답이 없으면 건강이 조금 좋지 않은 것, 50m 밖에서 불렀을 때 대답을 못하면 건강이 많이 좋지 않은 것, 10m 밖에서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으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이다.

 순간 남자는 아내의 건강 상태가 궁금해졌다. ‘신혼 분위기’를 내자는 핑계로 아내와 함께 외식하기로 한다. 남자는 의도된 느린 걸음으로 아내 뒤를 따라 걷는다. 남자는 100m 뒤에서 ‘메뉴는 뭐로 할까?’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대답이 없다. 남자는 잰걸음을 치기 시작해 50m 뒤에서 다시 물었다. 또 대답이 없다. 다시 잰걸음을 놀려 10m 뒤에서 물었다. 역시 대답이 없다. 가까이서 보니 아내 얼굴에 주름이 많다. 말끔한 외출복을 대신해 무릎 나온 운동복을 입은 아내가 애처롭다. 남자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묻는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로 할까?" 그러자, 아내가 귀찮은 듯 답한다. "아니 이 양반이, 귀가 먹었나. 내가 자장면이나 먹자고 몇 번이나 말해요?"

 아내는 나보다 5살이나 많다. 동서양 무술을 두루 섭렵해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던 나는 늘 아내 건강을 걱정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오랫동안 함께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며 꾸준히 운동하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불과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 몸 상태가 엉망이 됐다. 거기에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통증이라는 놈이 힐끔힐끔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내 몸을 도둑질하기 시작했다. 묵은 빨래처럼 널브러지는 내 몸. 몸이 비틀거리니 마음도 비틀거린다. 방바닥에 슬픔 한사발이 엎질러져 있는 느낌이다. 소서가 코앞이다. 숨 막히는 무더위를 데리고 여름이 들이닥쳤다. 햇빛으로 담금질한 화살촉을 쏘아대고, 굵은 빗방울들이 허공에 끊임없이 직선을 그어대기를 반복하는 지랄 같은 날씨. 건강 관리에 특히 주의해야 할 시기다. 영국 속담에 ‘좋은 아내와 건강은 최고의 재산’이라는 속담이 있다. 건강 잘 돌보시라. 아파 보니까 이말 하나 틀리지 않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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