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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입사동기인 두 사람이 2년이 지나 승진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사동기에서 이제는 경쟁상대가 된 겁니다. 한 사람은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는 사소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곤 했습니다. 자기 일도 아닌 서류함을 청소한다며 늦게 퇴근하기도 하고, 아침마다 다른 사람들이 마실 커피를 준비하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겁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휴직계를 내고 사라졌습니다. 부인의 병간호를 한다면서 눈물까지 흘리며 떠나는 그를 보며 직원들은 혀를 끌끌 차며 속삭였습니다.

"저 친구 하나 없다고 우리가 일하는 데 무슨 지장이 있겠어? 있으나마나한 사람인데 뭘."

그러나 그가 떠난 다음 날부터 그렇질 않았습니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으니까요. 아침마다 향긋한 커피 구경을 할 수가 없었고, 책상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습니다. 서류함도 뒤죽박죽돼 있고, 휴지통도 항상 넘쳐 흘러 사무실 곳곳이 어수선했습니다.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그가 없는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화면 옆에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는 걸 보았습니다. ‘내가 편하면 다른 누군가가 불편함을 견디고 있는 것이고, 내가 조금 불편하면 누군가는 편안할 것이다’

무능하다고 여긴 그가, 있으나마나한 사람이라고 여긴 그가 바로 꼭 필요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함께 있을 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우리들 곁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가까이 있으면 쉽사리 그의 단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린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를 보러 갔습니다. 매표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소년의 앞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은 당황한 모습으로 매표소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부부, 이렇게 6장의 티켓을 사기에는 돈이 부족한 것을 안 소년의 아버지는 어쩔 줄을 몰라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그 사람들 바로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이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던 소년의 아버지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더니 몰래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집어 들더니 망연자실하고 있는 아이들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돈이 떨어졌네요. 조금 전에 지갑을 꺼내시다가 떨어진 모양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지폐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소년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차린 듯이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눈물로 가득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갔지만,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는 서커스를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소년은 어른이 됐고 전문가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날 서커스를 보지 못해서 속상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갖게 됐다."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요? 소년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아버지의 행동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세계적인 소설가인 톨스토이가 일흔이 넘어 쓴 책 중에 「세 가지 질문」이란 동화 같은 소설이 있습니다. 세 가지 질문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대면하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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