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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창작한 마르셀 프루스트가 한 말이다. 특별히 이번 여행에서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던 대작가의 말이다.

 여행은 설렘을 주고 마음을 힐링하게 하고 새로운 경관에 취해 행복을 주지만 여행지에서 보고 만나는 풍경과 사람을 보면서 깨달음의 자각을 얻어가는 시간이 있어서 소중한 것 같다. 11시간이 넘는 하루의 반을 소비한 긴 비행 후에 도착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다. 여행객을 태운 전세버스가 잠시 멈춰 설 곳을 찾던 중에 앰뷸런스가 다가왔다. 버스 기사는 이십여 m쯤 앞에 차를 세울 요량으로 서행을 했고 멈춰 선 버스에서 여행객들이 내렸다. 곧바로 독일 아주머니 한 분이 버스에 올랐다. 아주머니는 기사를 향해 가더니 마땅치 않는 표정과 목소리로 훈계를 했다. 또 우리 여행팀의 가이드에게도 단단한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이드 말이, 법규를 지키지 않는 방문객은 환대할 필요가 없다며 앰뷸런스가 지나가면 즉시 멈춰서야 하는 법규 위반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라고 했다.

 원칙과 법치가 바로 선 나라는 국민의 삶이 든든해 불이익과 억울함이 없을 터라 인권이 탄탄하겠다 싶어서 독일 아주머니의 항의 방문에 숙연해졌다. 질서를 어긴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철저한 준법정신과 이를 지켜가려는 정서가 부럽기도 했다.

 이 일만으로 독일의 국민성을 찬양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근본과 원칙을 추앙하는 세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갑질로 떠들썩한 일련의 사건들이 겹쳐 보이고 매뉴얼대로 시행했었다면 충분히 막았을 대형 인명사고에 화가 나서다.

 독일 아주머니의 참견이 깐깐하다고 일행 중 누군가는 뒷담화를 했지만 내 일이 아니면 성가시고 귀찮은 일들이 생길까봐 못 본 척하는 경우는 없었는지 반성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나가 더 있다. 지명도 생각나지 않는 국도 변의 시골마을에서다. 풍광이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소박한 찻집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차를 마셨다. 그런데 벌같이 생긴 곤충이 많이 보였다. 꽃등에의 일종인데 벌처럼 쏘거나 하지는 않지만 탁자에도 사람에게도 수시로 날아와 앉으니 성가시기는 했다. 찻집 직원에게 퇴치약를 살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찻집의 젊은 남자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안 된다고 했다.

 올해 유난히 개체수가 증가하기는 했지만 환경을 위해서도 곤충을 위해서도 살충제 살포는 무익하다고 했다. 날벌레에 짜증이 난 일행분이 무모한 자연보호라고 화를 내며 일어서 나가자 젊은 직원은 뭐가 문제인가, 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덜 까탈스럽고 한편으로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 같았다.

 독일 사람은 무뚝뚝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철학자의 길을 묻는 이방인에게 자동차에서 내려서까지 친절했던 할아버지도 기억에 남고 괴테하우스를 바로 옆 블록에 두고도 찾지 못해 근처를 몇 바퀴째 돌고 있는 우리를 보고, 유모차에 아기를 뉘어놓고 친구와 브런치를 즐기고 있던 젊은 엄마가 우리 손을 잡고 괴테하우스에 데려다 준 호의도 잊혀지지 않는다.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앎이란 본질적으로,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10일이면 그리 긴 시간도 아주 짧은 시간도 아니다. 여독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열흘의 시간을 낯선 나라에서 보내며 제대로 앎의 이타심을 경험했다.

 우리 대다수는 세상에 엄청난 수혜를 안겨줄 만한 능력은 없다. 그래서 조셉 마셜3세가 쓴 「혼자의 힘으로 가라」에 나온 글귀에 마음이 끌린다. "이타심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가 이타심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타심이 엄청난 노력이 아닌 작은 호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몸으로 익힌 이타심의 경험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것 같다. 열흘의 시간이 새삼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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