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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일본을 보면 우리의 10년 후 모습이 보이고, 중국을 보면 우리의 10년 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진 때가 있었다. 몇 가지 사회적 특성을 제외하면 오늘날에도 무리 없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세 나라 모두 성장론, 발전론에 목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작지 않다. 일본은 전후 오랫동안 고도성장으로 번영을 누린 탓인지 시민들이 성장하지 않는 사회를 이해 못 하고, 중국은 170여 년 전 아편전쟁 이후 국가 부흥의 꿈을 잊은 적이 없었기에 국민들은 웬만한 불편을 참고 넘긴다.

싱가포르의 전 총리 리콴유는 2015년 사망하기 얼마 전에 "중국은 아시아의 1인자가 되고 중국에는 세계의 으뜸이 되는 것을 지상과제로 여기고 있다"고 했었다. 우리 역시 성장 발전에 관해서는 뒤처지기를 거부한다. 미세먼지 공포, 고용 없는 경제 성장, 생산 인구의 감소, 급격한 고령화, 고독사회의 한가운데서 절실하게 열망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내실 없는 슬로건이 난무하고 정책 개발은 뒷전, 정당만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효율, 성장, 경쟁과 같은 보수의 전통적 가치는 실종됐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공정성 제고와 양극화 해소, 지방 분권 확대 등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됐지만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르포 작가 후지요시 마사하루는 일본의 한 마을을 찾아가 지방 행정의 성공적 사례를 면밀히 살펴봤다. 노동자 세대 실제 수입액이 도쿄를 여유 있게 제쳤음은 물론이고 정규직 사원 비율에서 전국 1위, 대졸 취업률에서도 1위, 인구 10만 명 기준 서점 수효 1위, 노인과 아동 빈곤율 및 실업률에서는 최저를 기록하고 있어 이미 10년이 넘도록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행복도 평가에서 부동의 정상을 달리는 이유를 하나하나 확인했던 것이다.

 ‘이토록 멋진 마을, 행복한 동네 후쿠이 리포트’에서 그는 ‘10년 앞을 내다본 교육’을 기초 삼아 지역의 독자적 학습법을 구축해온 후쿠이 시장의 노력을 지적했다. 그 내용은 평범했다. 우선 학교에서는 대학입시에 맞춘 수업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에 역점을 두었다. 잘하는 학생은 조금 뒤떨어진 학우를 도와 함께 공부했다.

이런 교육 덕분에 대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과 일을 그만둬야 하는 노인들은 사라졌고, 모두가 즐겁게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으며, 아이들은 마을이 함께 돌보며 길렀다. 주민들 모두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이런 성장 발전이 자신들의 삶을 풍성하게 바꾼다는 체험으로 지속됐다.

 마이클 하워드 영국 보수당 대표는 십여 년 전 이런 신조를 밝혔다.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국민은 자신이 지닌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책임 없는 자유는 없으며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불평등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며 기회 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나는 믿는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항상 거듭되는 ‘새 단체장에서 바란다’는 내용 가운데 "이전 단체장과 단절적인 시정 운용 유혹을 떨쳐버리고 시정의 연속성을 확보하면서 자신의 시정 구상을 조화롭게 펼쳐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 조언이 있다. 지금까지 지방권력의 교체기마다 등장하는 폐해가 바로 전임 단체장의 흔적 지우기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이는 다반사였다. 모두가 공감할 만한 정책들은 승계해 보다 발전시키도록 해야 하며 이미 투자된 인적·물적 자원이 한순간에 매몰비용이 돼 주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더욱 절실한 것은 후쿠이 사장의 행복마을 만드는 기본적인 방향 설정이다.

 성장발전론은 동북아 세 나라의 국민 모두가 절실히 원하는 바고 ‘함께 다스리고’ ‘더불어 다스리는’ 첨병이 되지 않겠다는 단체장은 없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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