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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사)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지난 7월 7일 인하대학교 총동창회는 교가 지명 순례의 일환으로 작년 팔미도에 이어 월미도를 답사했다. 교가 첫 머리의 ‘월미 팔미섬을 감돌아…’의 섬들을 되돌아보면서 애교심과 애향심을 되살렸다. 각 지역에서 생활하는 1958년 학번 선배를 위시해서 250여 명이 참석했으니 이 행사의 의미가 남달랐던 것은 틀림없다. 1953년 2월 인하대학 ‘발기취지서’에 MIT와 같은 명문대학으로서, 인천과 하와이의 앞 글자를 딴 ‘인하’를 교명으로 한다고 명시한 이래 1954년 4월 24일 첫 신입생 입학식을 거행했으니, 그날이 지금까지 기념하고 있는 ‘개교기념일’이다. 인천과 월미도(月尾島)는 순치(脣齒)의 관계로 인천이 수도 서울의 현관이라면 월미도는 그 현관에 딸린 대문이며 팔미도는 정원이었다.

 월미도가 한국의 역사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636년 병자호란의 아픔을 겪은 뒤부터였다. 청(淸)에 대한 북벌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인천의 월미도에서 영종도를 거쳐 초지진을 통해 강화도로 피신하는 새로운 피난처를 선택하게 됐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국왕의 임시 거처인 월미행궁(行宮)이었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인천항을 출입하던 프랑스 함대가 현재 작약도(芍藥島)인 물치도(勿淄島) 앞바다에 정박한 일이 있었는데 그들은 월미도를 함대사령관이던 로즈(Roze)제독의 이름을 따서 ‘로즈도’로 명명하고 해도(海圖)에 기록했다.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미국함대도 로즈도를 목표로 침입했다. 일시나마 월미도는 우리도 모르게 서양 이름을 갖는 이변을 겪었다.

 1882년 임오군란 때에는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가 월미도에 숨었다가 영국 선박 플라잉피시호를 타고 간신히 일본으로 도피한 일도 있었다. 1883년 개항지로서 인천 제물포가 선택된 데에는 다름 아닌 월미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월미도 정박지가 여러 섬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어 풍랑이 있더라도 큰 파도가 칠 걱정이 없고, 대형 선박이 항상 정박할 수 있으며, 제물포와 월미도 사이에는 썰물 때도 한줄기 수로가 형성돼 있어 선박이 접안해 화물 등을 실어 나르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빠른 조류에 의한 해난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공사관기록’에는 1895년 11월 13일 "에드가호의 수병 72명이 보트로 귀함하던 도중에 폭풍으로 전복해 그 중 45명이 익사했음"을 보고하고 있다.

 1918년 인천 내항의 갑문 설치가 1차 완공되면서 인천부는 월미도를 풍치지구로 지정했다. 섬 중턱에 순환도로를 축조하고 도로변에 벚꽃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그리고 1923년 한강에서 흘러오는 급한 물살을 막기 위해 월미도 쪽으로 약 1㎞에 달하는 2차선 둑길을 축조했다. 월미도가 유명세를 탄 것은 이 둑길 완성 후인 1923년 7월 남만철도주식회사에서 소형 해수 풀(pool)과 조탕(潮湯)을 개장하면서부터이다. 특히 벚꽃이 피는 4월이면 철도국에서는 경인철도에 행락객을 위한 열차를 운행하기도 했다. 1935년 6월 빈(濱)호텔을 건립하고 이듬해는 밀물 때 마치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설계한 용궁각(龍宮閣)이라는 일본식 연회장도 세워졌다. 유원지 조성은 조선인들이 민족의식과 저항의식을 희석시키려 했던 간계로도 작용하고 있었다.

 한때 개항이라는 이름으로 열강의 군함이 활보했던 이 평화로운 섬은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고 한국전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기도 했다. 그리고 반세기 동안 월미도는 군사기지로 엄격한 통제를 받는 지역이었으나, 1987년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고 2001년에는 관광특구로 지정돼 친수공간 확장과 월미산 개방이 이루어졌다. 또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이 들어서서 지역의 역사성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공원도 조성돼 시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던 ‘월미은하레일’도 ‘월미모노레일’로 바꾸고 내년 5월쯤 개통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인천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근현대사의 숱한 사건을 묵묵히 지켜본 이 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좀 더 다양한 콘텐츠 구축을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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