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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석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봄이나 여름 자동차를 몰고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달리다 보면 저만치 떨어진 도로 위에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차가 막상 그 지점쯤 도달해 보면 물의 흔적은 조금도 없다. 다시 눈을 들어 앞을 보면 또 도로 위로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신기루(蜃氣樓)이다. 신기루란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빛의 이상 굴절로 나타나는 허상’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아무런 근거나 현실적 토대가 없이 가공의 사물이나 헛된 생각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요즈음 한국 사회에 이 신기루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거론하고 신문 지면에서도 거론하는 신기루 가운데 공통된 것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내가 듣고 보기에 대표적인 신기루는 북한을 엘도라도(Eldorado: 황금이 나는 땅)라고 보는 ‘엘도라도 북한 신기루’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동북아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그에 따라 정부가 신북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므로 북한지역이 국내외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덩달아 요즈음 북한 땅엔 수천 조 원 가치가 있는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고, 북한 노동자는 저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다는 ‘엘도라도 북한 신기루’가 횡행하는데, 과연 그럴까?

 현재 정부 부처와 공신력 있는 연구 기관은 최근에 이뤄진 북한 지하자원 매장량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다며 북한 지하자원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문 속의 북한 지하자원 매장량은 추정치에 불과한 셈이므로, 엘도라도인 양 제시되는 엘도라도 북한 땅은 사회 일각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튀겨지고 부화뇌동으로 키워진 신기루라 볼 수 있다. 설사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이 양적으로 막대하다고 하더라도, 그 자원의 순도가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매장량이 막대하고 순도 높은 고품질 자원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원의 채굴 비용과 수송비는 또 다른 문제이다. 북한의 지하자원을 채굴해 이용하는 것이 해외 자원을 수입해 이용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인지는 분석을 필요로 한다. 객관적 분석 없이 경제성을 배제한 채 유포되는 ‘엘도라도 북한’은 전형적인 신기루인 셈이다. ‘저임금 북한노동자’를 고용하는 북한 내 사업 대박론 역시 또 하나의 신기루이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체제가 보장된 북한에서의 사업은 한국과 다른 체제를 가진 외국에서의 사업과 다를 바 없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그만 못할 수 있다. 같은 동포 노동자에게 국제 수준 이하의 임금을 지불하는 저임금 노동은 부당하다는 국내의 비판과 더 이상 저임금 노동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북한 노동자의 저항이 제기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노동자를 대신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외국노동자 대체론이 주장되기도 하지만, 북한이 남한으로의 인력 송출을 허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신북방정책으로 북한에게는 경제 발전의 호기가 오겠지만, 북한의 작은 경제 규모와 유효 수요를 감안하면 한국 기업에게 북한이 기대한 대로의 엘도라도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급변하고 있는 국제정세에 따라 주변국이 북한의 주요 도로와 철도, 항만 이용권을 선점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북한 내 도로, 철도, 전기, 가스 등 기반시설 건설과 동북아 연계 개발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은 과거와 달리 자기 책임 아래 대북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있고, 내일의 북한은 어제의 북한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민간부문의 각 경제 주체는 ‘엘도라도 북한 신기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것 말고도, 우려스러운 신기루로 반도체와 석유화학 업종이 보여주는 선전(善戰)만 보고 한국 경제가 좋은 줄로 착각하는 ‘호조 경제 신기루’, 시혜적인 정책이라 받는 것은 좋기에 갈채를 보내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피해에는 눈을 감는 ‘소득주도성장 정책 신기루’ 등이 있다.

 요즈음은 이래저래 지각 있는 국민의 분별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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