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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단어는 생각보다 다양한 감정을 동반한다. 언제나 내 편, 돌아갈 수 있는 곳, 안전한 울타리와 같은 따뜻하고 든든한 이미지가 있는 반면 때론 성가시기도 하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으며, 언제부턴가 쌓인 마음의 골로 서운함이 깊어지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장성한 자녀들이 가정을 꾸리고 식구가 많아질수록 전 가족이 모두 만나기란 쉽지 않다. 시간을 내어 함께 둘러앉더라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분위기가 가라앉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만회하기 위해 실없는 농담으로 한바탕 웃음이 피어나더라도 다시 흐르는 정적 속에 어색함이 맴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순간 화기애애한 기류가 느닷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웠다가도 금세 섭섭한 감정이 밀려드는, 기쁨과 아쉬움 사이를 끝없이 오가는 관계가 가족이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 모임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들과 미묘한 감정을 다룬 작품이다.

 동네 의원을 하시던 아버지의 집에 온 가족이 모였다. 1년 만에 만나는 자식들을 위해 푸짐하게 음식을 마련했음에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먼저 도착한 딸과 사위는 손주들을 데리고 내년에 부모님 댁으로 들어올 거라며 통보처럼 말한다. 아버지의 진료실을 개조해 분리된 두 가구를 계획 중인 딸과는 달리 부모님은 내키지 않는다. 반면 둘째 아들은 부모님을 뵙기 전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이가 있는 사별한 여성과 결혼한 아들은 부모님의 반응이 몹시 신경 쓰인다.

 다행히 가족 모임은 별 일 없이 흐르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불편한 정적이 문득문득 찾아온다. 사실 가족이 모인 오늘은 큰아들의 기일로, 첫째는 10년 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목숨을 잃었다. 누구보다 듬직했고 의젓했던 큰아들의 부재는 모두에게 상처로 남았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아픔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남겨진 형제들은 그리움과는 다른 형태의 상처를 받는다.

어떻게 해도 형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무력함, 언제나 번듯했던 형처럼 부모님에게 자랑이 될 수 없다는 열등감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소원하게 했다. 어긋나고 빗겨가는 마음 속에서도 잔잔한 진심을 느꼈던 가족 모임은 3년 뒤 부모님의 산소로 자리를 옮겨 이어진다.

 일본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완벽하게 닿을 수 없는 가족 간의 마음을 포착한 작품이다. ‘오늘은 잘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삐걱대는 모습을 통해 한 발 늦은 진심을 이야기한다. 뒤돌아 헤어질 때 느끼는 시큰한 통증은 다음에 만날 때는 ‘더 참자, 더 잘하자’를 다짐하게 하지만 기쁨과 슬픔, 서운함과 후회는 늘 반복될 뿐이다. 가족은 누구도 영원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상대가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난 후에야 전하지 못한 진심에 후회한다. 허물 없는 사이일수록 있을 때 잘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내 가족과 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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