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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법학 박사
국방부가 지난 4일 위수령 폐지안을 입법예고했다. 위수령(衛戍令)은 경찰을 대신해 군부대가 특정 지역에 주둔하면서 치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 대통령령이다. 1950년 3월 당시 이승만 정권이 군대를 동원해 소요사태를 진압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했는데, 68년 만에 폐지될 예정이다. 국방부는 위수령 폐지를 제안한 이유로 "최근 30년간 시행 사례가 없는 등 실효성이 낮고 상위 근거법률의 부재로 위헌 소지가 많다"고 밝혔다.

또 "위수령의 제정 목적은 현행 타 법률에 의해 대체가 가능하고 치안질서 유지는 경찰력으로 가능하기에 더 이상 대통령령으로서 존치 사유가 없다"고 밝혔다. 위수령 폐지안은 다음 달 13일까지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국무회의 의결로 확정된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8월 한·일협정 반대 시위와 1971년 교련반대 시위, 1979년 김영삼 국회의원직 제명 시위 등에 위수령 발동으로 대응했다.

이처럼 위수령은 독재정권이 국민의 의사 표현을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짓밟는 일에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활용한 악법이었는데, 마침내 이를 폐지하려 한다니 진정으로 환영할 일이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 때 군 당국이 위수령·계엄령 발동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은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 제하의 문건을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는데, 문건에는 ‘국민들의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려, 초기에는 위수령을 발령해 대응하고 상황 악화 시 계엄 시행 검토’라는 내용과 함께 구체적인 시행계획이 포함돼 있다. 기무사는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될 경우 광화문과 여의도에 과격시위가 예상된다면서, 청와대와 헌재 등 4개 중요시설에 최소 3개 여단 규모의 병력을 배치하고, 광화문에는 공수여단을 포함한 3개 여단, 여의도에는 2개의 여단을 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엄군으로는 모두 육군에서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천800명, 특수전사령부 병력 1천400명을 동원한다고 계획했다. 또한, 계엄선포 후 군이 24개 정부 부처를 전부 장악하고, 보도검열단을 만들어 언론을 통제하며, 시위 주동자들의 SNS 계정을 폐쇄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삼복더위를 잊어버릴 만큼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쫙 끼친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잔학한 진압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선혈을 흘렸던 끔찍한 상황이 서울 한복판에서 확대 재연됐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런 군의 무력적 시위진압에 ‘법적 근거’ 내지 ‘합법성의 기초’라는 빌미로 활용될 위수령을 폐지하기로 한 것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법’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 ‘법’이 아니다. 정부가 만들었다고 해서 국민을 복종시킬 권능이 ‘합법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치시대에 벌어진 만행들도 당시의 ‘법’에 의해 ‘(형식적)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지 않았던가. ‘법치의 탈’을 쓰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른바 ‘악법(惡法)’을 없애야 한다. 이것들은 형식적으로는 ‘법’이라고 불릴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이 아니라 ‘깡패들의 무기’일 뿐이다. ‘법’은 형식적 합법성뿐만 아니라 실질적 합법성까지도 지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땅히 헌법정신에 부합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주권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법을 통해서만 진정한 ‘(실질적)법치주의’가 작동될 수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양성한 군 지휘관들(일부 육사 출신들)이 ‘국민을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국민을 해치는 군대’를 획책한 사실이 밝혀지면 관련자들을 엄중 처벌해야 한다. ‘비상시’를 대비한 계획 차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기무사가 계통 절차도 밟지 않고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 불순하기 이를 데 없다. 위수령·계엄령이 더 이상 군의 정치개입 수단이 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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