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구·광주에는 이것이 있다. 인천에도 이것이 없지는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함께 이슬처럼 사라진 뒤 되찾지 못할 뿐이다. 1998년 쓰러진 경기은행(옛 인천은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기은행이 퇴출되자 지역에서 돌고 돌았던 6조 원도 순환을 멈췄다. 1997년 기준 경기은행의 총 수신액이었다. 이후 인천시민이 번 돈의 절반 이상은 타지로 줄줄 새 나갔다. 지역 금융의 구심점은 그렇게 상실됐다. 이는 지역경제의 ‘돈(錢)맥경화’와 ‘시(市)부유출’을 가속화시켰다. ‘지역은행 재건’과 ‘지역화폐 활성화’가 이를 막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끊임없이 거론되는 이유다. 지역은행의 부활 가능성과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제반 여건을 짚어 봤다. <편집자 주>

# 대구 사람, 부산 사람만 못하랴

 보너스를 받아 기분 좋은 날에도, 마이너스통장이 필요해 울적한 날에도 부산 사람은 부산은행으로, 대구 사람은 대구은행으로 달려간다. 부산·대구은행의 지역 내 시장점유율은 40%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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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6월 14일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 세워진 경기은행 본점 신축 기공식.
 광주 사람도 광주은행을 찾는다. 토착은행이 없는 인천 사람은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각자도생’하는 금융이다 보니 통계가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1969년 설립된 인천은행이 지금도 지역 곳곳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면 부산 시민이 부산은행을 가장 먼저 찾는 것처럼 인천시민들도 인천은행을 먼저 들를 것이다. 이는 부모 세대에게 ‘학습된 의리’이며 지역민의 자긍심이다. 여기에 오십보백보한 타 은행과의 금리 차액을 앞서는 애향심이자 궁극적으로 국부론(지역 발전)의 실현이다.

 인천은행이 부활하면 우선 지역 안에서 돈이 돌고 도는 순환형 경제구조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 서울에 주로 본사를 둔 시중은행을 통해 지역에서 조성된 대규모 자금이 역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지역화폐를 지역은행과 함께 활용하면 시너지 효과는 배가된다.

 지역은행은 또 통상적으로 대기업 및 자사 금융상품에 영업력을 쏟아붓는 시중은행과 달리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중산층·서민들을 위한 소매금융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를 통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상당수 중소기업인과 서민들의 금융 지원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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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경기은행 모습.
지역 사정에 밝은 지역은행은 지역주민·기업·기관에 대해 정량적 평가보다는 ‘정성적’ 관점에서 관계 맺기를 시도하기 때문에 촘촘한 영업망 형성과 맞춤형 금융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지역에서 축적된 정보를 기반으로 지역의 사회·문화·관광 콘텐츠를 금융서비스와 함께 제공할 수도 있고, 시금고로 우선순위를 점할 수 있어 지역 실정과 정치·경제적 현안에 따른 긴급 자금도 운용할 수 있다.

 경기 변동에 민감하지 않은 고정적 수익(출자·출연·저축)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지역사회 공헌활동과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 돈, 의지, 기술력 삼박자 있나

 지역은행이 일단 부활하려면 인천시의 리더십과 지역 기업의 협조, 최첨단 기술력(핀테크)이라는 3박자가 맞아야 한다. 지역화폐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된다.

 지역은행을 세우려면 관련법에 따라 최소 자본금 250억 원과 영업시설부터 마련돼야 한다.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재원 마련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시가 대주주로 나서더라도 주식 보유는 15% 이내로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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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6월 1일 인천은행이 경기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뒤 새로운 현판식을 갖고 있다.
시는 전문경영인을 들여 사업의 공익성, 자금의 적정성, 수익 전망의 타당성 등 사업계획을 내실 있게 짜고 리스크 관리와 전산망 구축, 자금 심사·승인체계 구축 등으로 은행 설립 조건을 갖추면 된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자금 지원과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인천은행이 문을 연다 하더라도 지금도 한창인 은행 간 ‘인수합병(M&A)’과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비(非)대면 온라인 뱅킹 시대’에 지역은행이 흑자를 내며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지역은행의 간판을 달고서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저금리 수신과 고금리 여신 운용에 따른 높은 예대마진을 노릴 수도 없는 처지다. 예대마진은 대출로 받은 이자에서 고객들에게 돌려준 이자를 뺀 나머지 수익인데, 국내 대표적 지방은행들은 최근 대출금리 조작에 연루돼 물의를 빚고 있다.

 이처럼 지역은행 설립을 위한 이상향에는 치열한 경쟁과 인터넷·모바일뱅킹, 콜센터와 ATM 영업 등 첨단기술에 기반한 적자생존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정책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조차도 지역은행 설립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지역에서 돌고 돌아야 ‘해피 머니’

 지역경제 선순환을 위해 지역은행 설립이 최적이지만 이보다 낮은 단계의 대안도 있다. 지역화폐의 유통이다. 지역화폐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해 사용돼 왔던 온누리상품권이 진화된 형태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과 마찬가지로 특정 지역에서 발행해 유통되는 지역화폐 역시 종이 형태나 동전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온라인 결제’라는 추세에는 한참 뒤처진다.

 최근 성남시의 ‘아동수당 지역화폐 대체 지급’ 논란에서 보여지듯이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든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지역화폐를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백 억의 예산을 들여 핀테크 및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가입 매장에는 전용단말기를 설치하고 실물카드 발급 시스템과 모바일 QR코드 인식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이는 서울 노원구가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거래 내역 기록 및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을 접목한 지역화폐 ‘노원’을 단기간에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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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30일 인천시청에서 열린 ‘인처너(INCHEONer)카드-인천사랑 전자상품권 시범사업 우선협상 대상업체와 시행협약식의 한 장면
 ‘No Won’은 돈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뜻으로 구는 노원을 통해 지역공동체와 사회적 가치 실현,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모바일 간편 결제가 가능한 노원은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출시한 지 넉 달 만에 회원 수 5천400여 명, 화폐 발행액 6천500만 원(노원)을 기록했다. 노원 가맹점 수는 247곳에 이른다. 예를 들어 사용기준율이 20%인 가맹점에서 1만 원 상당의 상품을 모바일 QR코드로 결제하면 2천 ‘노원’과 8천 원의 현금 또는 신용카드가 동시에 결제되는 방식이다.

# 인처너카드, 시민 사랑 받고 경쟁 우위 점할 수 있나

 인천시도 지난달 14일 모바일 연계형 충전식 선불카드인 ‘인처너카드’를 전국 최초로 발행했다. 이 카드는 원하는 은행계좌를 모바일 앱(App)에서 연결해 체크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백화점과 기업형 슈퍼마켓, 전통시장에서 아직 사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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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노원구의 지역화폐 ‘노원’을 홍보하는 홍보물
7일 현재까지 지역 일반상점들의 카드 전산관리를 맡고 있는 벤사를 설득하지는 못해 이 카드를 사용하면 통장에서 결제대금은 빠져나가되 가맹점이 아닌 곳에서는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 또 모바일 QR코드 방식이 탑재되지 않았다. 하지만 카드번호를 통해 휴대전화로 상품을 결제할 수 있다.

 한 달이 경과한 현재 카드 발급을 위해 온라인에 앱을 내려받은 시민은 500명 수준이다. 가맹점 수는 250∼300개소이다. 상품권과 마찬가지로 최대 소비층은 공무원이 될 전망이지만 인처너카드와 공무원 복지포인트, 각종 복지수당, 바우처 등과의 연계는 다음 번으로 미뤄졌다. 소상공인들이 원했던 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 주문 앱도 이 카드에 탑재되지는 못했다. 다만 카드가맹점에 배달 주문 시 배달 수수료는 면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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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처너카드로 상품을 결제하는 한 고객.
전문가들은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가맹점 수가 확대된다면 구매자는 역내 소비를 통한 할인(3∼7%)을 받아 좋고, 가맹점은 수수료가 인하(0.5∼0.0%)돼 매출 증대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인처너카드가 시의 보조금 지급으로 민간사업자의 배만 불리는 ‘버스카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이 사업에 시의 지분 확보(서울시 KSCC에 35%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인처너카드의 연간 발행액이 향후 2천억 원 수준(현재 700억 원 목표)으로 커질 때를 대비해 공공기관이 이 사업을 직접 맡아 지역은행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렇게만 되면 이 전자화폐가 창출한 수익 중 일정 부분(5∼10%)을 지역발전기금으로 적립해 지역사회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경제를 만들 수 있다.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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