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위로부터 물려받은 안정된 직업과 신분을 과감히 내쳤다. 다른 이들이 거는 가능성과 기대 따위는 거들떠도 안 봤다.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낯선 길에 그들은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바쳤다. 최고의 경지를 항해 혼(魂)을 불살랐던 그 지독한 열정은 육신까지 갉아먹었다. 남들이 권력과 부귀를 탐하며 중앙을 기웃거릴 때 그들은 신념과 진실을 쫓아 지방에서 헤맸다.

케케묵은 얄팍한 전통적 세계관과 결별하고, 습속에 족쇄를 채운 낡은 지적 원기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물질보다 정신, 외면보다 내면을 받들었던 당시 지적 토대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럴수록 이데올로기의 배반자로, 시대를 같이할 수 없는 패륜아로 찍혔다. 틀을 벗어난 생각과 행동은 미친 짓으로 폄훼됐고, 기득권과 어울릴 수 없는 고독한 주변인의 삶을 살았다.

중인이 아니면 평민, 천민과 기생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떨쳐내고 그들은 남이 넘볼 수 없는 거장(巨匠)의 자리에 올랐다. 탐험가, 프로 바둑기사, 춤꾼, 만능 조각가, 책 장수, 원예가, 천민시인, 천문 기술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분야였다.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진정한 프로페셔널 ‘벽광나치오(癖狂懶痴傲)’를 있게 한 힘은 자의식과 자부심이었다. 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자존심, 최고라는 자부심, 그리고 오기였다.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그림을 강요하자 한쪽 눈을 찔러 불구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하기 싫은 연주를 거부하며 거문고를 부숴 버렸다. 다른 장인들과 섞여 똑같이 받는 대접이 내키지 않아 아예 급료도 포기했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굴욕을 감당하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오기로 뭉친 도도함은 그 버팀목이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조건 없이 도전하는 아름다운 열정, 기호일보가 함께 할 30년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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