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남이 본디 그러할진대 남을 탓해서 무엇하리오마는 서럽던 시절의 암울은 칠흑이었다. 자유와 민주는 수구권력의 그럴듯한 전리품이었고, 또 다른 집권의 방편으로 똬리 틀었다. 자유는 권력집단의 책임을 팽개치는 무기였고, ‘한국적’을 덧댄 민주는 세도의 도구이었다. 도덕은 이익 극대화의 절대선으로 타락했고, 의리는 무뢰배들의 값싼 만용으로 길들여졌다. 시대를 호령할 만한 식자(識者)의 불 같은 정신도, 세상을 꾸짖는 깊이 있는 사유도 희미했다. 지식인은 지름진 말로서 정의를 다퉜고, 흐린 날 산맥을 보듯 헛된 문장으로 법을 희롱했다. 한미(寒微)한 자의 높고 큰 뜻은 부질없었고, 억압에 대한 분노는 삭여야 하는 허물로 삼았다.

 오랜 세월 겹겹이 쌓인 역사의 굴절은 서릿발같아야 할 통치이념을 세속화의 갈래로 내몰았다. 일제강점기 호강했던 친일세력이 반민족행위 처벌 주창자를 빨갱이로 몰았듯이 거짓이 판쳤다. 그 잘난 심학(心學)을 들이대며 혹세무민했던 기호(畿湖)산림이 득세했던 과거로의 회귀였다. 1988년 7월 20일. 군사독재 미완의 해체기 기호일보는 결자해지의 무게를 짊어지고 분연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더라도 열정과 집념이 천착한 생을 채워가는 이의 이름을 써 내려가야 했다.

 주류의 밖에서 ‘무리와 다른 짓하는 놈들’이 더는 패자가 아닌 진정한 승자로 기록해야 했다. ‘기호’는 역사의 구각(舊殼)을 깨기 위해 스스로 작은 돌멩이 하나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함께 했던 기호 30년의 역사는 지난의 가시밭길이었으나 그 숭고한 뜻만큼은 비단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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