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30년이란 세월은 변화가 너무도 많았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다.
이 시절에 공부하고 성장해 온 청춘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과거이자 아름다운 추억이 돼 버렸다.
앙평군의 변화도 그렇다. 촌스러운 동네가 사통팔달의 교통 여건을 갖춘 도시로 변모했다. 그 변화의 흐름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주>
양평은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류를 나타내는 ‘두물머리’, 천년 역사의 세월을 견뎌낸 용문산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양평군은 1908년 9월 양근과 지평이 합병하며 하나가 됐다. 군을 상징하는 새는 비둘기, 나무는 은행나무, 꽃은 진달래다. 행정조직은 양평읍을 포함해 용문면·옥천면·강상면 등 12개 읍·면이 있다. 한반도의 중·서부에 있는 경기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양평은 지역이 매우 넓다. 서울시의 1.45배로 경기도내에서 가장 크고, 산림이 73%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11만여 명을 넘어섰고, 20.7%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양평은 시골이지만 도시 못지않게 해외 팝·중화권 배우들의 스타일이 유행했다. 버버리 코트와 찢어진 나팔청바지, 땡땡이 남방, 비비화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다. 특히 청바지와 청재킷으로 맞춰 입던 촌스러운 ‘청청’ 패션이 유행했다.
지금은 양평하면 해장국이 떠오르지만 그땐 대표적인 먹거리가 적었다. 옥○냉면과 양평 중국집의 ‘쌍두마차’였던 ○○반점과 홍○관 정도였다.
30년 전 새내기 공무원이었던 이모(55)씨는 "양평군청의 직원들도 400여 명 남짓했다. 올림픽 유치로 전국적으로 대규모 국토 가꾸기가 진행됐다. 당시는 군청 공무원들도 낮에는 작업복을 입고 꽃을 심으며 청소를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야간에 밀린 부서 업무를 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 2018년 양평은 … ‘사통팔달’의 문화·레포츠·복지·건강·학습 중심도시로 ‘우뚝’
2018년 현재의 양평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교통 여건을 갖춘 도시가 됐다. 비둘기 열차로 강릉에 가던 것이 이제는 양평에서 KTX를 타고 간다. 여기에 양평에서 파주까지 운행되는 중앙선 전철 개통으로 서울·수도권에서 1시간 이내에 양평을 오갈 수 있다. 또 중부내륙고속도로 및 경춘고속도로 양평나들목 등이 개통했다.
사계절 내내 축제가 열리는 곳이 양평이다. 대표 축제인 산나물 및 고로쇠 축제 등 곳곳에서 삶의 활력을 충전할 수 있다. 소외계층에 대한 맞춤형 복지서비스, 사례관리, 방문보건사업 등 다양한 복지정책과 주민 건강 증진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교육발전기금 및 장학금·도서관 인프라 구축 등도 주목할 만하다.
양평은 규제를 딛고 인구 10만 시대를 열었다. 이제 경기 북·동부지역 중심도시로 더 큰 도약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양평=안유신 기자 ay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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