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30년 가까이 되고 있다. 그동안 일곱 번의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시민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의 일꾼을 뽑는 것이 당연한 의무로 인식됐지만 낡은 제도로 인해 지방자치의 균등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헌옷’으로 전락한 지방자치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편집자 주>

▲ 지방분권 헌법 개정 촉구 국회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염태영 수원시장.
# 우리나라 지방자치 첫 출발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군부정권이 국가를 장악했다. 부당한 국가권력에 반기를 들거나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들은 정부기관에 의한 탄압과 통제의 대상이었다.

 엄혹한 시기에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인 지방자치제도는 중앙의 통제와 감시, 감독으로 굴러가던 독재 정부를 위협하는 제도였다. 지역주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를 통해 그 지역의 행정과 사무 등을 자율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1952년과 1956년, 1960년 등 3차례에 걸쳐 지방선거가 치러졌지만 군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 및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당시에는 지방선거가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았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에 의해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1년 잠들어 있던 지방자치제도 부활을 추진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6월 역대 지방선거 최고 투표율 속에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질 수 있었다.

 당시 지방자치제도는 시행 초기여서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행착오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기초단체의 도시 규모가 팽창하기 전이어서 운영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국자치분권 개헌추진본부 출범식 및 천만인 서명운동 출정식. <수원시 제공>
# 현행 지방자치법 한계 직면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기존 지방자치제도에 손 댈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예전에는 광역·기초단체로 행정체계를 나눠도 충분히 조직 운영이 가능했지만 수원시를 시작으로 고양에 이어 용인까지 도내에만 100만 이상 기초단체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새로운 행정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성남시와 화성시 등 100만 인구를 목전에 뒀거나 지역 개발수요가 많은 도시들도 현 실정에 맞도록 지방자치법을 개정하자는 데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당 지자체들은 광역단체보다 불합리한 행·재정적 대우를 이유로 들면서 ‘특례시 도입’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는다. 지방자치제도 첫 시행 당시에는 기초단체에 속했지만 신도시 개발로 인한 인구 증가에 따라 인구수가 100만 명을 넘어서는 광역단체로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기초단체에 준하는 행·재정 권한만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예산 및 행정 규모에 제약을 받으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특례시로 지정되면 인구 규모에 맞춰 공무원 수와 해당 직급이 늘어나고, 도가 받던 세원이 특례시로 이양돼 세수 증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택지, 문화시설, 농지, 청사 건축 등에서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고 개발지구 지정 권한과 시립박물관·미술관 설치 권한도 생겨난다.

▲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 참석자들이 지방분권개헌 경기회의 출범식 및 개헌 촉구 결의를 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 전국 최대 기초단체의 비애

 1960년대부터 경기도청 소재지로서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던 수원시는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전국 기초단체 중에서 최초로 인구수 100만 명을 돌파한 이래 지금까지 ‘전국 최대 규모의 기초단체’라는 타이틀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수원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매탄 및 영통지구를 비롯해 정자 및 천천지구 준공, 광교신도시 및 호매실지구 조성 등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꾸준히 인구가 증가해 왔다. 5월 말 기준 인구수 124만1천908명이 등록돼 있어 광역시급 도시 규모를 갖췄다.

 문제는 이 같은 사정과 달리 지방자치 첫 시행 때부터 적용받던 기준이 그대로 이어져 오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광역행정 수요에 대한 신속한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수원시는 인구수가 124만 명에 달해 광역단체인 울산시 인구 118만 명보다 6만 명이나 많지만 획일적인 지방자치제도로 인해 행·재정상 비효율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단적으로 수원시 공무원은 2천987명, 공무원 1인당 주민 수는 415.2명, 올 예산은 2조7천293억 원이다. 반면 울산시 공무원은 6천66명, 공무원 1인당 주민 수는 195.4명, 올 예산은 5조8천618억 원이다. 도시 규모는 광역단체급에 속하지만 광역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무원 수·예산 등에서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 지방분권개헌 500인 원탁토론.
# 지방자치법 개정 절실

 현행 지방자치법 시행령은 인구 50만 이상 도시의 사무 특례가 규정돼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행·재정적 능력 및 산업구조의 특성, 인구 규모에 따른 특성 등을 실질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법에 명시된 특별·광역·특별자치시, 도·특별자치도, 시군구 등 8개 구조를 개선해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에 ‘특례시’라는 100만 이상 도시의 카테고리를 신설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의 100만 이상 대도시 가운데 특례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곳은 수원시다. 지역 국회의원의 관심도 높다. 2016년 7월 이찬열·김영진 국회의원은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지정광역시’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형태의 ‘지방자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같은 해 8월에는 김진표 국회의원이 100만 이상 대도시에 사무·조직·인사 교류·재정 특례를 부여하는 ‘지방분권법 개정법안’을 발의한 바 있지만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상태에 놓였다.

 수원시 관계자는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 특례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며 "국회에 상정돼 있는 대도시 특례 관련 법안이 조속히 상정될 수 있도록 국회와 중앙부처에 지속적인 당위성 설명과 논의를 통한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 법적 지위 확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종대 기자 pjd@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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