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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백세(遺芳百歲) 유취만년(遺臭萬年)

원현린 주필<主筆>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7월 23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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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
‘갑질’이라는 우리 사회 부끄러운 속어가 영어 ‘Gapjil’로 둔갑돼 국제어가 된 지는 이미 오래라는 소식을 외신에서 접했다. 좀 지난 얘기지만 대한항공 일가가 보여준 한 알의 땅콩과 물 한 컵의 갑질에서 비롯된 행태들이 드러남에 따라 우리를 허탈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생산되고 있는 대추, 살구까지도 법망을 피해 수입해 먹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우리를 아연실색케 했다. 이 와중에 한술 더 뜬 또 다른 항공사, 아시아나 항공사 회장의 갑질 또한 할 말을 잃게 하고 있다. 말 그대로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해 TV마저 꺼 버리곤 했다는 필자의 지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에게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애당초 기대하는 것이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가진 자들의 끝없는 갑질 행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 한다.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하고 교양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천박한 인간들의 일상 단면도라 일축하면 그만일게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민들의 분노가 너무 크다.

 그러잖아도 서민들 사이에서는 행복과 불행은 비교에서 비롯된다고들 한다. 지속되는 혹서기 폭염으로 시민들의 불쾌지수는 높아 폭발 직전이다. 뜨거운 이 삼복더위에 곳곳에서 화재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 실정으로 청년백수는 늘어만 가고 서민들의 생활 고충도 말이 아니다. 가뜩이나 각박한 사회를 더욱 황량하게 하고 있는 연이은 갑질 소식들로 영혼마저 황폐화되고 있다.

 재력을 갖고 있고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있다 하여 모두가 치외법권 지대에 살고 있는 신분이라고 착각하는데서 오는 우리 사회 고질적인 폐단들이다. 그들도 결코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계층들이 아니다.

 불구속 수사가 우리 형사소송법상 수사의 대원칙이기는 하지만 다수 시민들의 정서와는 달리 갑질 행위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기각되고 있다. 짐작컨대 전례로 미루어보아 재판절차를 통한다 해도 처벌 수위가 낮게 끝맺음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해도 도덕적 비난은 피할 수가 없을게다. 도덕적 비난에는 기한이 없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달라진다.

 유방백세(遺芳百歲), 유취만년(遺臭萬年)이라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남에게 선을 베풀며 착한 행적을 남긴 사람은 그 꽃다운 덕행이 백세까지 남겨지고, 악행을 저질러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자의 악취는 만년까지 이른다는 말이다.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최고의 선덕(善德)은 물과 같다 했다. 물은 만물에게 좋게 베풀고 이롭게 해주지만 자신을 위해 다투지는 않는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비천한 곳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물의 특성은 도(道)에 가깝다고 설파했다.

 그는 인간의 수양(修養)을 물이 지닌 일곱 가지의 덕목(水有 七德)에서 찾고 있다. 그 첫째는 하나는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謙遜)이다. 둘째는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智慧)다. 셋째는 흐리고 탁한 구정물도 받아 주는 포용력(包容力)이다. 넷째는 어떤 그릇에나 담길 줄 아는 융통성(融通性)이다. 다섯째는 바위도 뚫을 수 있는 끈기와 인내(忍耐)다. 여섯째는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勇氣)다. 일곱째는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大義)의 덕(德)이 그것이다.

 일찍이 나옹화상은 "명리는 화를 부르는 무서운 불길(名利禍門爲猛火), 옛부터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이 불길에 타 죽었는가(古今燒盡幾千人)"라고 하여 욕심 많은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려 했다.

 단순히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탐욕으로 뭉친 소인배들은 이를 알 리 없다. 근자의 갑질 행태들을 목도하고 있자니 차라리 연민의 정까지 느낀다. 우리는 예로부터 가문이나 문벌이 매우 훌륭한 집안을 일컬어 갑족(甲族)이라 칭해오고 있다. 속칭 ‘갑질’하여 비난받는 천갑(賤甲)이 되는 것보다, 베풀어 존경 받아 ‘갑족’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이 더 낫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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