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의 세월은 구리시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1990년대 초·중반 토평동 일대와 인창동에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지고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들어서면서 급격한 인구 증가와 함께 구리시 중심인 돌다리 인근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먹거리·볼거리 등이 생겨났다.

특히 돌다리 인근 수택동에는 이 무렵 곱창골목이 형성되면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이로 인해 도시는 향락·소비도시로 전락하는 등 기형적으로 발전했고, 대규모 택지개발로 인해 한때는 거대한 서울시의 위성도시 베드타운이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편집자 주>

# 동구릉의 어제와 오늘

 30년 전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매우 격동적인 시기였다. 신군부 세력의 군사정변에 맞선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이어지는 군사 독재의 폭압에 맞선 1987년 6월 항쟁과 직선제 쟁취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이 거듭된다.

 이러한 가운데 1970~80년대 잊혀지지 않는 것은 소풍일 것이다. 봄·가을이면 구리시 인근 초·중·고등학교는 조선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구리시 대표 문화재 동구릉으로 긴 행렬의 진풍경을 이루며 즐거운 소풍에 역사 공부는 덤으로 얻어갔다.

▲ 1970년대 구리시장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와 후비를 안장한 동구릉의 핵심은 조선 1대왕 태조 이성계의 능인 견원릉이다. 견원릉은 다른 왕릉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세풀을 입힌 것이 특징이다. 고향에 묻히길 원했던 태조를 위해 아들인 태종 이방원이 고향에서 흙과 억새풀을 가져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경기동북부 관문도시 구리시

 경기동북부 관문인 구리시는 현재 20만여 명의 인구에 면적은 33.31㎢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도시다. 서울의 위성도시로 서남쪽은 서울시와 하남시, 동북쪽은 남양주시에 인접했고 한강과 왕숙천 유역으로 대체로 평지가 많고 지대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 1986년 10월 10일 열린 제1회 시민의 날
 국도 43호선이 시의 중심을 남북으로 지나고 국도 46호선, 경강국도가 동서로 가로지르며 외곽순환도로, 구리~포천고속도로 등 교통의 요충지로 손색이 없다.

 인구 증가와 함께 각종 지표에서는 괄목한 만한 성장을 거듭했으나 시 전체 면적의 약 62%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고 수도권정비계획법 과밀억제권역, 군사보호구역, 문화재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로 인해 그동안 산업단지 등 기업체 유치가 불가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일제는 구지면 10개 리와 망우리면 15개 리, 그리고 노원면, 미음면 일부 등을 병합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했다. 이때 구지의 ‘구’자와 망우리의 ‘리’자를 따서 구리면이라 했으며,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됐다.

▲ 푸른 잔디가 아닌 억새풀을 건원릉 봉분.
 1963년 1월 1일 묵동·중하·상봉·신내·망우 등 5개 리가 분리돼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인창·사노·교문·수택·토평·아천·갈매 등 7개 리가 남으면서 양주군 구리면으로 개편됐다. 1973년 7월 1일 구리읍으로 승격됐고, 1980년 4월 1일 양주군에서 분리돼 남양주군으로 편입됐다.

 이어 구리읍은 해마다 인구가 급증하고 발전이 거듭되면서 1986년 1월 1일 남양주군에서 분리돼 시로 승격됐다.

 승격 당시 구리시는 갈매동·동구동·인창동·교문동·수택동·수평동 등 6개의 법정동으로 출발했다. 당시 서울 근교에 입지하고 전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에 속해 토지 이용이 제한된 농토인 관계로 시민들은 호박·오이·상추·파 등 채소류를 생산하는 도시근교 농업을 주업으로 살아갔다.

# 교육문화 중심도시로 우뚝

 구리시는 매년 5월과 9월 한강변에서 열리는 유채꽃 축제와 코스모스 축제를 시의 대표적인 축제로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동구릉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널리 알리기 위해 2004년부터 매년 5월 열리는 구리동구릉건원문화제를 꼽을 수 있다.

▲ 현재 구리전통시장 모습
 변변한 공연장이나 극장 하나 없는 구리시에 2013년 개관한 구리아트홀은 시민들에게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며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구리시는 물론 인근 도시 등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시청 앞 이문안호수공원은 과거 교문동과 토평동 일대 농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곳이 공원으로 탈바꿈해 주민들의 산책로 등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시 대표적 명소인 장자호수공원도 환경을 뒤로한 채 산업화에 떠밀려 도금·염색 등으로 인한 각종 오염물질로 썩어 가던 장자못을 1990년대 후반 토평택지개발과 함께 오염원을 제거하고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호수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1986년 시 승격 시 2만3천382가구에 인구는 9만2천69명이었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갈매동·동구동·인창동·교문동은 교문1·2동으로, 수택동은 수택1·2·3동으로 분리됐고 2018년 6월 현재 7만8천418가구에 인구는 20만1천663명으로 급증했다.

 구리경찰서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치안 유지와 교통질서 확립 등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남양주경찰서에서 분리돼 2003년 12월 19일 개서했다.

▲ 구리시 전경
 또 각종 재난·재해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1987년 11월 25일 구리소방서가 개서됐다.

 교육기관도 1986년 초등학교 6개 교에서 올 현재 16개 교로, 중학교 2개 교에서 8개 교로, 고등학교 2개 교에서 6개 교로 늘어나면서 교육환경도 양적·질적으로 늘어났다.

 의료기관도 1986년 의원급 26개소에 129병상, 치과 6개소, 한방병원 5개소였다. 인구 증가와 함께 의료 혜택 인구가 늘어나면서 현재는 종합병원 1개소를 포함해 병원급 15개소, 의원급 146개소에 2천534병상과 치과 89개소, 한방병원 61개소가 지역에 산재해 있다.

 이같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구리시의 미래를 위해 새롭게 당선된 안승남 시장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갈매동 일대에 계획된 테크노밸리 사업 성공과 토평동 일대 구리월드디자인시티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구리=윤덕신 기자 dsyu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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