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의 상권 변화 과정은 그 도시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몰락과 궤적을 함께 한다. 사람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도로와 철도 등 기반시설도 확장된다. 항구 등도 영역을 넓힌다. 그곳을 통해 사람들은 수많은 물류와 기술, 그리고 유행까지 함께 받아들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시는 사람과 물류, 기술, 첨단을 달리는 유행이 결집한 ‘상권’, 즉 ‘번화가’를 형성한다.

 본보는 인천의 도시 형성 과정과 함께 최근 30년간 번성했던 상권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지역 ‘번화가’의 흥망성쇠 과정을 통해 지역 소비문화의 중심지가 어떻게 변화돼 왔는지 변천사(變遷史)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 인천의 도시 형성과 상권의 형성

 한반도 서부지역 경제의 거대한 축인 인천은 조선 초 인천도호부로 승격돼 유지되다가 고종 32년인 1895년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인천부(仁川府)로 변경됐다. 시간이 흘러 해방 후 1949년 8월 지방자치제가 도입·시행되면서 인천시(仁川市)로 개칭됐다.

 1981년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탄탄한 경제적 입지를 바탕으로 직할시로 승격했다. 그 후 당시 김포에 속해 있던 지금의 계양지역과 영종도, 용유도가 차례로 편입되고 1995년 강화군과 옹진군, 검단지역이 인천에 편입되면서 광역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인천은 조선시대 관문 역할을 수행한 도시로, 병인·신미양요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1883년 개항을 맞이한다. 1899년 국내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가 놓이며 서양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됐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60년대에 들어서 인천은 항구도시로서의 기능과 함께 경공업과 중공업이 고르게 발달하며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한다. 1970·80년대에 들어서 급속도로 팽창하는 인구와 상승하는 경제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됐다.

# ‘인천 얄개들의 성지’ 동인천역 일대

 동인천역은 한때 인천지역 최고의 번화가였다. 지금은 연수구로 이전한 인천여고를 비롯해 제물포고, 인일여고, 인성여고 등 주요 학교가 밀집해 있었다. 이와 함께 경인철도 동인천역과 지역 내 시내버스 대부분이 이곳을 거쳐 갈 정도로 교통요충지였다. 비교적 싼값에 갖가지 물건을 팔던 지하상가도 많은 사람을 이끄는 데 한몫했다. 1970·80년대 이곳은 학생들의 천국이었다.

 

▲ 1960년대 중반~70년대 초반 동인천역 광장의 모습. <인천시 제공>
동인천역 앞 인현동 일대는 문구점과 화방, 체육사, 학원, 사진관 등을 비롯해 분식점이 성행했다. 특히 동인천역 로터리에서 제물포고 방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만복당, 명물당 등의 분식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분식점들의 최고 메뉴는 단연 ‘쫄면’이었다. 가히 쫄면의 원조 도시다운 모습이었다.

 당시 인천 만남의 장소 1순위로 꼽히던 ‘대한서림’도 이곳에 있다. 대한서림은 1953년 처음 문을 열었다. 개인 휴대 통신장비가 없던 시절, 대한서림은 인천의 대표적 랜드마크였다. 과거 우리는 그곳에서 짧게는 시집, 길게는 소설을 읽으며 친구, 연인, 가족을 기다렸다.

 동인천역 주변 상권은 1999년 10월 중고생 등 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 이후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그렇게 얄개들의 천국이었던 동인천은 시간이 멈춰진 원도심으로 남은 채 이제는 중·장년이 돼 버린 인천 토박이들의 추억으로 남았다.

# 1990년대 1020세대의 중심지 주안역

 주안역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번성을 누렸던 인천 미추홀구 최대의 상권이었다. 주안역은 구한말 경인철도가 개통돼 간석동에서 현재 주안동으로 역사(驛舍)를 이전하면서 역세권 상권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정학적으로 인천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지역 주요 관공서를 비롯해 금융기관과 학원시설, 병원, 예식홀, 대형 나이트클럽, 대학교 등 밀집된 집객시설이 발달했다.

▲ 미추홀구 주안동에 위치한 주안역 일대 최근 전경.
주안역은 2000년대 초까지 유동인구가 하루 평균 10만 명가량으로 추정될 만큼 번화했다. 주안역 일대 상권은 대표적으로 국철 이용객과 쇼핑을 목적으로 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는 지하상가 상권, 주안의 유명한 예식장인 고려웨딩홀 뒤편에 형성된 2030 상권, 학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문학원(옛 한샘학원) 상권, 주안역 후문 상권으로 나뉘었다.

 1980년대 중반 주안역은 로데오거리를 중심으로 위너스, 투모로우, 에메랄드, 터치바이터치 등 명성을 떨치던 나이트클럽이 5곳이나 성업할 정도로 지역 내 번화가로서 인기를 구가했다. 1990년대 중반 들어 주안 로데오거리는 입소문을 타고 인천지역을 비롯해 부천·서울 등지에서 ‘원정’을 오는 1020세대들로 북새통을 이뤄 주안역 상권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 주안역 번화가
 최근 주안역은 과거의 명성을 뒤로한 채 3040세대를 위한 유흥업소로 탈바꿈하고 있는 추세다. 젊은 층의 이탈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원인이다. 1020세대를 주요 소비주체로 해 성장해 왔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 침체와 함께 젊은 층의 소비 약화, 주요 상가의 노후 시설 개선 미흡 등으로 주안역 일대 상권은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 대한민국 지하상가 쇼핑의 메카, 부평

 부평지하상가, 문화의거리로 대표되는 부평 상권은 명실공히 인천의 가장 넓은 상권이다. 부평지역은 경인철도 부평역사를 시작으로 1960년대 대규모 자동차 산업단지와 아파트 단지 조성을 거치며 급부상한 상권이다.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바탕으로 백화점, 대형 마트, 국내 최고 규모의 지하상가 등 접객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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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가을 부평역에서 바라본 부평 풍경. <부평구 제공>
1990년대 초반까지 동인천과 주안역 일대 상권에 밀려 있었으나 폭발적 인구 증가에 따른 주거시설 확충으로 절정에 달했다.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며 인천도시철도가 개통됨에 따라 당시 하루 유동인구가 5만 명을 상회했다.

 부평은 지상 상권과 지하 상권으로 나눌 수 있다. 지상 상권은 부평역 광장(옛 부평역 시계탑)에서부터 옛 진선미 예식장, 부평시장 로터리까지의 대로변과 그 이면도로로 다양한 음식점과 노래방, 카페, 주점 등 업종이 성업해 현재까지도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부평지역 최고의 귀금속 업체였던 ‘명신당’이 있던 문화의거리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브랜드 위주의 의류, 스포츠용품, 액세서리 가게와 함께 당시 가장 유행했던 패스트푸드 업장과 화장품업체, 미용실 등이 자리잡아 청년 수요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무려 31개의 통로와 1천400여 개 점포가 입점한 지하상가는 동대문과 비견될 수준의 패션의 메카로 소문이 났다. 현재는 자취를 감췄으나 해외 무역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해외 음반과 비디오, 서적 등 정상 경로로 구하기 어려운 외국 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던 병행수입 업체들도 즐비했다.

 1962년 개관해 50여 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한극장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멀티플렉스 극장에 밀려났지만 그 명맥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어 젊은 세대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기성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선사한다.

# ‘불야성의 광장’ 구월동

 송도와 함께 인천 상권을 이끌어 가는 ‘쌍두마차’인 구월동은 인천도시철도 1호선 예술회관역 일대부터 인천고속버스터미널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일반 주거지가 대부분인데다 간단한 분식집과 식당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며 약 5만 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 생성과 편의시설, 행정시설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신흥 상권으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 구월동 번화가
 1994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 완공되고, 용현동에 있던 버스터미널이 1997년을 기점으로 이전해 오면서 인구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1980년대 중반에 조성된 남동산단과 중구 쪽에서 이전해 온 시청과 경찰청 등 행정업무 관련 시설들이 유치되면서 강력한 상권으로 발돋움했다.

 구월동 일대에 조성된 4개의 대형 광장과 다양한 업종의 상점들은 인천의 젊은이들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두 개의 유명 백화점을 중심으로 패션매장과 성형외과, 대형 서점, 대형 카페, 프랜차이즈 음식점은 물론 주점, 클럽 등이 속속 어우러지며 현재 구월동은 인천 젊은이들의 주말 저녁을 책임지는 가장 뜨거운 상권으로 급부상했다.

# 첨단을 달리는 새로운 명소, 송도

 인천 젊은이들에게 송도는 그야말로 가장 ‘핫’한 곳이다. 각종 매체를 비롯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블로그 등에 이르기까지 송도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상권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바다를 메워 세워진 새로운 도시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2009년 주요 인프라가 들어선 이후 송도는 국제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첨단시설, 마천루, 주요 행정·경제기관이 자리잡았다. 특히 NC 큐브를 비롯해 트리플 스트리트, 현대 프리미엄 아웃렛, 코스트코 등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대형 쇼핑센터와 휴게시설이 마련돼 있다.

▲ 송도 커낼워크 모습. <인천시 도시경관 변천기록 아카이브 제공>
 송도국제도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인천지역의 구매력 있는 20∼50대 수요자들의 발길이 송도에 집중되고 있다.

 배후수요 또한 풍부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코오롱글로벌, 셀트리온,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의 기업이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 인근 11공구에도 대규모 바이오 관련 기업 유치가 계획돼 있고, 종합병원 건립계획도 있다. 송도는 대학생과 교직원의 수요도 갖췄다. 연세대를 비롯해 인천글로벌캠퍼스, 인천대, 인천가톨릭대 국제캠퍼스가 들어서 있다.

 송도의 상권은 이른바 ‘스트리트형’으로 발전될 예정이다. 주변의 대학과 연계한 패션, 의류, 액세서리, 먹거리를 접목한 시스템이다.

 앞으로 송도는 한 지역에서 쇼핑과 외식, 문화생활을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올인원(All in one) 상권’으로 젊은 층을 넘어 중·장년층의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제성 기자 wj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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