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진보의 외길을 걸어온 고 노회찬 국회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기 전 정의당 당원들에게 남긴 유서의 일부분이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지만 돈을 받은 사실 자체를 전면 부인해왔던 터라 스스로 말을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진보정객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결국 진보 정치의 별은 스스로가 정한 ‘무결점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그렇게 혜성처럼 나타나 유성처럼 사라졌다.

혹자는 ‘변’ 묻은 정치인이 부지기수인데 ‘먼지’ 하나 묻었다고 목숨까지 던지냐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그를 떠나게 만든 건 드루킹 특검의 무리한 수사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치자금법 자체에 있다며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심경은 천 번 만 번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일이 우선일게다.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미완의 진보정치를 완성하는 일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지난 2004년으로 기억된다. 모 공중파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에서다.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노 전 의원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50년 동안 쓰던 ‘판’을 이제는 갈아야 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서 삽겹살을 구우면 고기가 시커멓게 됩니다. 이제는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그는 이 한마디 멘트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언어의 연금술사, 정치비유의 달인이라는 별칭도 그때부터 얻지 않았나 여겨진다. 지금까지도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정치적 은유를 그는 가장 쉬운 언어로 표현했다. 이름하여 노회찬 어록이다.

지난해 9월 노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자유한국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반대하는 것에 대해 특유의 비유로 일갈했다. 노 의원은 "파출소가 새로 생긴다니까 동네 폭력배,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거랑 똑같다. 모기들이 싫어한다고 에프킬러 안 사겠습니까"라고 꼬집었다. 그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뿌린 진보정치의 씨앗은 이 시간에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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