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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경기시인협회 이사

치열했던 지방선거가 끝나고 민선 7기 임기가 차분히 시작되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선거 참모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입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밤낮 없이 열과 성을 다해 당선시킴으로써 일부의 참모들은 정무직 성격의 공무원으로 입성, 일반직 공무원들과 임기 동안 한솥밥을 먹게 됐다.

중앙정부의 셰도캐비닛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돼 있어 자치단체장의 보좌와 정책에 대한 자문위원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지방행정에 걸맞은 특색 사업을 발굴, 하나의 정책으로 입안하거나 정책 결정을 하여 일반직 공무원들에게 그 결정사항을 집행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실세 공무원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어공과 직공’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어공은 선출직 자치단체장과 정치적으로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가신 그룹이다. 따라서 단체장 취임 시 공직에 함께 입문한 임기제 신분의 공무원이기 때문에 ‘어쩌다 공무원’이 됐다는 뜻에서 생성된 속어이다. 직공은 그야말로 ‘직업이 공무원’이라는 뜻으로 공개채용으로 들어 온 일반직 공무원을 뜻한다.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계획 수립과 집행방법에 대해 어공과 직공들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공들은 주어진 기간과 시간 내에 주민들이 원하고 갈망하는 민원을 즉시 처리해 빤짝빤짝 빛나는 자치단체장의 성과물을 주민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만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이것은 곧 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본인들이 모시는 자치단체장의 다이내믹한 행보와 이로 인해 재선은 물론 더 큰 뜻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공들은 어공들 생각과는 다르다. 어공들이 단체장의 지시라며 빠른 성과를 주문하지만 직공들은 제반 법규 등 제도적 매뉴얼에 의거 차근차근 밟아 나간다. 예산이 어떻고 관련법이 어떻고 하며 계획된 일이 지연되기 일쑤다. 이쯤 되면 어공들은 속이 답답해지며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내가 어떻게 만든 주군인데…" 라며 직공을 원망하며 몰아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공과 직공 간에 주요 갈등 요인은 무엇일까? 어공은 결과에 치중한 목표 지향적인 반면, 직공은 각종 제도와 사례를 근거로 한 절차와 추진 과정, 수단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 과정에 양측 간에 괴리와 오해가 발생되고 대립국면까지 치닫는다.

 어공은 본인들의 정책과 시책에 반하는 직공들을 혁신의 의지가 없는 진부하고 식상한 행정을 펼친다며 저항 세력이나 무사안일, 복지부동 혹은 적폐세력으로 분류해 인사권을 남용하는 사례까지 발생한다. 직공은 직공대로 어공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실전 경험이 일천한 학자나 교수들이 법적 책임감 없이 민생을 실험대에 올려놓고 성공하면 내 탓이요 실패하면 네 탓, 즉 직공 탓으로 돌린다며 결국 어공들은 임기를 채우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직공들은 남아서 감사를 받고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의무감에 부담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공들은 직공들의 이러한 제도적 생리를 충분히 이해하며 접근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치단체장의 성공 여부는 어공이 아닌 직공들의 몸과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공들은 어쩌다 공무원이 됐지만 직공들을 적어도 30여 년을 공직이라는 굴레에 갇혀 살아 왔기 때문에 느림의 미학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단계를 밟고 나가는 습성이 있다.

 지시사항이나 정책 추진이 다소 느리다고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오히려 큰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씻을 수 없는 과오로 작용될 수 있다. 직공은 헌법 제7조에 의거 신분을 보장 받기 때문에 법과 원칙을 내세워 버티기 작전에 들어가면 누가 아쉽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직공과 소통이 필요하며 상호 절충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 모 자치단체에서는 공무원들의 명찰 패용 문제로 시끄럽다. 각 언론사들은 어공과 직공 간 기싸움으로 치부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앞으로 대망의 미래를 위하며 붕새의 날갯짓을 할 분이 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일까.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했다. 어떤 것이 진정 도민을 위한 일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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