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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생각보다 꽤 오래 갔습니다. 시인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를 질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이라는 목표만을 쫓아 질주하느라 좌우를 살피지 못하고 살아온 제 모습을 보았고, 그렇게 달려오느라 누구 한 사람도 뜨겁게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온 저의 부끄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들켰기 때문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일까, 라는 의문을 누구나 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아무나 행복할 수 없다는 현실! 행복을 위해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지만, 어느 날 문득 외로움이 밀려와 이제까지 제대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고는 다시 자문합니다. ‘행복의 비밀은 과연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라고요.

 십여 년 만에 동창생을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동창회 일로 많이 바빴던 친구였습니다. 몇 년 전에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과정에서 혈액암이 발견돼 1년여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암을 발견하기 전까지의 그의 삶은 늘 자신의 일보다는 남의 일이 먼저였습니다. 아내의 일과 바깥일이 겹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바깥일을 우선시했습니다. 그런데 병상에 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고 합니다. 진정 소중한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자신의 병이 낫기만 한다면 바깥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 자신의 가정, 자신의 친구 일에 집중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실 병을 앓기 전까지는 내가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동창회 자체가 안 될 줄 알았어. 그런데 병원에 있었던 1년 동안 모임에 나가지 못했는데, 퇴원하고 보니까 나 없어도 모임만 잘되고 있더라."

 이제 그는 아내와 함께 쇼핑을 다니고, 함께 낚시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다니는 그 일이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친구의 표정은 참으로 맑고 평화로웠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안도현 시인이 던진 준엄한 질책, 즉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을 지금 사랑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있는 존재들과의 진실한 사랑 속에서 발견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는 책에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다가 죽은 착한 부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부가 천사장 앞에 서자 천사장이 말합니다.

 "그대들은 매우 훌륭한 삶을 살았소. 그래서 당신들을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주려 하니, 그대들이 원하는 삶을 말해보시오."

 "별 욕심이 없습니다."

 "부잣집이나 귀한 집에 태어나고 싶지 않느냐?"의 질문에도 부부는 아니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댑니다.

 "천사장님, 그런 것은 저희가 전생에서 이미 누려본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저 아프지 않고, 가끔 책을 읽고 화초를 가꾸며, 때로는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삶이면 족합니다. 날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고 담담한 마음으로 저녁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 이상 어떤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천사장은 버럭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게 어찌 평범한 삶이란 말이냐? 그거야말로 가장 큰 욕심이 아니더냐. 그런 삶이 있다면 나부터라도 당장에 천사장 노릇을 그만두고 그런 삶을 택하겠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일구고 몇 안 되는 벗이지만 그들과 잘 지내면서, 자신의 일에 구슬땀을 뻘뻘 흘리며 사는 삶이야말로 천사장도 탐낼 만큼의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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