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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권홍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소장
지난 24일 오후 5시 최대 전력수요가 9천248만㎾에 이르면서, 그 전날의 역대 최대 전력수요 기록 9천70만㎾를 또다시 넘어섰다. 24일 오후 4시 전력예비율은 7.2%에 불과했다. 정부가 예측한 이번 달 최대 전력수요 8천830만㎾와 전력예비율 14%를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언론과 정치권은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예측했던 최대 전력수요 예측이 잘못됐다는 지적으로 소란스럽다.

 하지만 전력수요 예측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더 깊이 있게 논의돼야 하는 것들이 있다. 왜 이렇게 전력수요가 급증하게 됐는가, 이런 전력수요 증가 추세는 지속적인 것인가, 만약 수요 증가가 지속적인 현상이라면 정부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이 그것이다.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의 수요 예측은 그 표현에서 보는 것처럼 수요에 대한 예측에 지나지 않는다. 예측이 정확히 맞아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예측은 예측이고,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충분히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이루어진 예측이라면 이를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에너지 등 국가적 계획을 수립하는 경우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의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과연 이번 더위는 기후변화의 결과인가에 대해 먼저 과학적 증명이 있어야 한다. 통상적인 자연의 흐름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기후변화의 심화로 인한 결과이며 앞으로 기후의 불규칙성이 더 커질 것이 예상된다면 당장의 전력수급 문제를 넘어 인류의 생존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불과 더위는 주기적인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유럽·아시아 등에서의 이상기온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징후들이다. 일본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의 경우, 지난 23일 낮 최고 기온이 섭씨 41.1도에 이르러 일본 관측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노르웨이, 핀란드 등에도 사상 처음 30도를 웃도는 고온에 고생하고 있다. 심지어 북극지역 기온이 30도를 넘고 있다.

 만약 이번 여름의 고온현상이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향후 이런 현상의 재발을 과학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면 크게 심각할 것은 없다.

 하지만, 환경·기후 과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환경도 정치적 쟁점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예측을 벗어나는 기후는 인간으로 인해 지구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된다.

 이번 여름의 이상고온으로 인한 전력수급불안은 기존 발전소의 발전용량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극복해야 하겠다.

 이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라는 기치 아래, 위험한 원자력 발전과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의 중요 원인인 석탄발전은 장기적으로 감축하고 그 대신 태양력 등 친환경 에너지와 천연가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또한 이런 방향과 틀을 같이하는 것이다. 즉, 이번 정부는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을 큰 기조로 해왔다. 공급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의심할 여지를 제공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책은 완전한 선이나 악이라는 이분법에 맞지 않다. 하나를 얻자면 하나를 잃게 된다.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잡으려고 석탄을 줄이고 동시에 안전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원자력까지 감축하게 되면 신재생과 천연가스에 기초한 전기요금은 오르게 돼 있다.

 올해의 더위에 따른 전력공급 문제는 이미 충분하게 건설된 발전소들로 해결될 수 있다. 가동률을 낮추고 있던 원자력을 더 돌리고, 석탄발전 또한 가동시키면 된다. 생각보다 간단히 해소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즉, 이번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실효성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질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석탄을 중심으로 하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 답이다.

 한편 원자력의 위험을 고려한다면 석탄보다는 원전을 손봐야 한다. 그런데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을 최소화하려면 원자력과 석탄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신재생이 당장 원전이나 석탄에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천연가스는 여전히 비싸고 앞으로도 석탄이나 원자력과 경쟁할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기 어렵다.

 남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이 선택은 투명성, 전문성에 기초한 국민의 결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선택의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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