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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자본이 정치를 압도하고, 마케팅 전략이 선거를 지배하며, 수익성과 효율성이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합리성에 우선하고, 정치가 법원으로 넘어가며, 세계화가 국가 주권을 약화시키는 세상 속에서 시민들은 너무나 많은 이슈를 만나며 살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바빠서’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기는 행정 당국의 사고방식은 마땅히 사라져야 할 위험이다. 일찍이 공론조사의 창시자인 미 스탠퍼드대학 피시킨 교수는 "일반 시민에게도 공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이슈에 대한 시민 반응을 살펴보자. 판단의 권위나 전문성보다 더 중요한 관점, 즉 어떤 각도에서 이슈를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잘 녹아 있는 몇 가지다. 예컨대 관광객이 많이 몰려드는 명소에서 이를 환영해야 할 주민들이 항의하는 일이다. 경제 발전과 소득 및 휴일 증가, 교통 발달의 영향으로 국내외 관광객 유치전이 가열되면서 ‘한번쯤 가 볼 만한 곳’으로 알려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인파가 몰려들어 그곳이 되레 황폐화된다. 관광은 경제를 살리는 성장산업이지만 수용 능력을 초과하면 그곳 주민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인천 중구 송월동의 동화마을, 경남 통영의 원항마을 등에서 보이는 지역을 살찌우는 긍정적 효과에도 주민들이 일상 불편이 커져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 현상 말이다.

 한옥이 주는 운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면서 관광 수입을 늘려보자는 목표, 아름다운 바닷가를 활용해 주민 소득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하면 시작한 일들이 첨예한 갈등으로 나타난 배경에는 매우 시급하고 개선해야 할 세부적인 문제가 여럿 도사리고 있다. 상호 이해나 존중이 된 관광문화를 형성하는 기초적인 노력부터 없앴고,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의 관광객 통행을 제한하는 방안이나 불법 주정차 문제에 대한 대책, 사생활 침해, 쓰레기 처리, 소음 공해에 대해 둔감했던 건 사실 아닌가. 경주 양동마을처럼 관람료를 징수해 적절히 분배 사용하는 방식도 고려해봄직 했고, 대전시에서 관광 개발 과정에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조례를 제정한 사례도 참고했어야 했다.

 요즘의 국가대표급 이슈인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겐 불평등 완화를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는 조치일진대 현장의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통계와 데이터로 접근해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왜 최저임금 인상에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줄어드는지. 인건비 부담의 부당한 전가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흔히 자영업은 마지막 수단이고, 고용이 안 되니 자영업으로 진출하는 청년들의 활로이자 위험한 기로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바다.

 그들의 목표는 대개 카페와 술집, 식당이다. 소비 인구는 줄고 시장에 진출하는 수효는 넘치면서 이들 시장은 일대 격전지가 됐다. 어디가 뜬다 하면 빚을 내서라도 점포를 얻고, 열심히 하다 보면 손님들이 꼬이는데 이때쯤 가겟세가 오른다. 가겟세. 즉 임대료는 곧 부동산(건물) 가치의 바로미터다. 그렇게 부동산 가치를 올려주는 건 집안 돈 끌어대어 땀 흘려 일한 청년들인데 실제 이익은 건물주가 가져간다. 혹 영업 실패로 종잣돈 까먹고 물러나도 이미 올라간 임대료는 내려갈 줄 모른다. 그럼에도 청년 창업은 국가나 지방정부가 애를 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기대와 달리 그 시장은 불행히도 가장 실패하기 쉬운 분야다. 그야말로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정의 불행이자 사회적인 불행이 되고 만다. 그저 ‘운이 나빴어’라고 끝날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이런 이슈들이 북핵 문제나 무역 분쟁 같은 거대 이슈들에 묻혀 버릴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벗어 던지는 것이 옳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려면 논리보다 정성에 의존하고, 자신들을 지지하는 이들만을 ‘진정한 시민’으로 여기는 포퓰리스트들을 따라 배우는 정치·행정가들의 사고 혁신이 필요하다. 시민과 소통하라. 정서가 아니라 논리와 참여를 통해 해결하라. 이미 촛불로 확인된 바지만 시민들은 준비가 돼 있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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