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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사상 초유라고 부를 만한 폭염이 연일 온 세상을 달구고 있다. 일부 지역의 낮 기온이 기상청 자동관측 장비에 40도를 넘긴 40.3도가 찍혔다는 소식이다.

 오죽하면 여름철 대구를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고 부르고 ‘광프리카(광주)’ ‘서프리카(서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까?

 실제로 아프리카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콩고에서 가장 덥다는 수도 킨샤사조차 적도가 지나가는데도 한여름 기온이 33도를 좀처럼 넘지 않는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더구나 38도를 기록했던 며칠 전 경인지역의 온도가 사막의 도시 카이로와 같은 온도를 기록했다고 하니 이 무서운 무더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이 크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도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멀쩡하던 고속도로가 솟아올라 사고 위험성이 커지고 있고, 냉방기기 고장이 이어지고 있어 고속열차 운행에도 큰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온열질환 환자가 이미 2천 명을 넘어섰고 27명이 숨졌다고 한다. 수백만 마리의 가축들이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폐사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연일 최대 전력 수요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력 예비율이 6%대로 위험수준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까지 나서 폭염을 재난 수준으로 보고 대책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각 지자체마다 홀몸어르신들이나 장애인 등 폭염 취약계층의 건강 실태 점검에 나서고 노숙인 쉼터도 설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도심열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도로에 물뿌리기를 하거나 인공 냉각구역을 설치하고 그늘막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딱히 시원해졌다는 느낌은 없다.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이 꽤 많을 것이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 작은 새의 시체,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동물원의 호랑이, 나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 무관심한 옛 친구처럼 사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슬픔과 우수를 그린 수필로 기억한다.

 읽기 편한 한 편의 수필이었지만 행복보다 슬픈 상황을 감각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해 한 편의 서정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학생시절에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게 하는 좋은 글 중의 하나이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를 견디면서 뜬금없이 안톤 슈나크의 명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생각났다.

 견디기 힘든 폭염보다 우리를 더 덥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연일 우리들 앞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바람이라도 불어왔으면 하는 소망으로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래층 사람의 담배연기는 정말 우리 식구들을 덥게 만든다. 폭염을 다소 피해볼 요량으로 모처럼 가족과 함께 찾은 피서지에서 겪는 바가지요금과 불친절이 또 우리를 지치고 무덥게 한다.

 지하철 임산부 자리에 앉아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큰 목소리로 오랜 시간 전화를 하는 중년 사내가 우리들을 덥게 만든다.

 폭염 속 통학차량에 어린 아이를 수시간 방치해 사망케 한 어린이집 관계자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가슴이 저려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나라걱정을 온통 혼자 하는 듯 터무니없는 거짓 기사를 밤낮 없이 퍼 나르고 있는 몇몇 지인들도 우리를 덥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본질이 따로 있을 것 같은 최저임금 논쟁을 직접 겪고 있을 일용직 근로자들과 소상공인들 역시 먹고 살아야 할 걱정에 이번 폭염보다 더 지독한 더위를 겪고 있을지 모른다.

 국민을 향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어이없는 문건을 세밀하게도 만들어 놓고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폭염보다도 더 우리를 무덥게 만든다.

 이처럼 사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어려움부터 커다란 문제들까지 우리 주변에서 연일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폭염보다 더 우리를 덥고 힘들게 한다.

 견디기 힘들었던 이번 더위도 결국 머지않아 찬바람에 밀려 물러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바람이 있다면 폭염보다 우리를 더 무덥고 힘들게 한 몰염치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의 잘못된 행태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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