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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절정에 선 8월은 예상보다 훨씬 뜨겁고 힘들다. 폭염을 견뎌내기에 에어컨도 한계에 부딪힌다. 곳곳에선 정전 사태가 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전기세 걱정에 마음껏 틀지도 못한다. 여건이 된다면 시원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며칠 쉬다 오고 싶은 심정이지만 여러 이유들로 현실이 녹록지 않을 때 찾을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이 바로 극장이다. 현실을 지우고 새로운 시공간으로의 여행을 이끄는 영화 보기는 요즘처럼 무더운 날 제격이다. 비록 오늘 소개하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4년 전 개봉해 극장에서는 볼 수 없지만 겨울 배경으로 펼쳐지는 만큼 시원한 느낌을 시각적으로나마 전달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강렬한 색채와 더불어 1930년대의 럭셔리 호텔 인테리어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동유럽의 우아한 시절을 품고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함께 체크인해 보자.

 세계 최고 부호인 마담D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보내는 나날이 노년의 큰 즐거움이다. 특히 자신에게 잘해주는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에게는 연정을 느끼고 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 마담D는 며칠 뒤 사망한다. 부고를 받자마자 구스타브는 로비 보이 제로와 함께 문상길에 오른다. 하지만 뜻밖에도 마담D의 죽음이 살인사건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구스타브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졸지에 범인으로 몰린 구스타브는 제대로 변호조차 못한 채 억울하게 수감된다. 제로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구스타브는 누명을 벗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다층적 액자 구성으로 조직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동명의 책을 읽는 한 소녀의 얼굴에서 시작한다. 책은 저자가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대한 내용이며, 그 무대가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저자에게 이야기를 전한 사람은 로비 보이 제로로, 그는 호텔의 전성기를 이끈 구스타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차 대전 발발 전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가상의 국가인 주브로브카 공화국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호텔을 중심으로 펼쳐낸다. 활기와 낭만으로 가득했던 호텔은 보라색, 오렌지색, 핑크색 등의 화려한 색상으로 채워져 마치 동화 속 삽화처럼 빛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예술과 유희를 사랑했던 낭만의 시대에 종말을 고한다. 1980년대까지 근근이 유지되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더 이상 일류 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없을 만큼 빛바랜 모습으로 남게 된다.

 이 작품은 전쟁 이전의 우아한 시절에 대한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이 녹아 있어 발랄하고 코믹한 가운데에도 애수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휴가철인 요즘 이 영화가 주는 장점은 세계 최고의 호텔에서 투숙하는 느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무더운 여름, 멀리 갈 수 없다면 영화 속 세계로 잠시 피서를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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