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은 ‘세입자들의 천국’답게 베를린시와 연방 차원에서 세입자들을 위한 각종 제도가 갖춰져 있다. 여기에 월세 상승 제한 및 주거환경 개선 등 세입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단체가 운영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역 내 10여 개의 세입자협회부터 지역별 주택조합까지 크고 작은 단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입자들의 고충 해결과 체계적인 권리 보호에 힘쓰고 있다.

▲ 베를린세입자협회 전경과 사무실 내부 모습.
# 세입자들의 대변인, 베를린세입자협회

 베를린시 내 조직된 세입자협회 중 가장 대표적인 협회는 ‘베를린세입자협회(Berliner Mieterverein e.V.)’다. 이 협회는 130여 년 전인 1890년대에 조직됐다. 현재 회원 수는 17만여 명으로, 베를린 내에서 가장 많은 회원 규모를 자랑한다. 또 독일 외 다른 나라의 경우 자가주택 비율이 비교적 높아 세입자 수 자체가 베를린보다 적은 만큼 유럽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회원이 소속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협회는 소속 세입자들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 의미가 크다. 베를린시나 베를린시의회, 연방 등 각종 주거정책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세입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낸다. 협회 조직 이유가 세입자들의 이익 보호인 만큼 공청회 등 각종 자리에서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 수립된 정책에 대한 감수, 세입자 입장에서의 법률적인 상담도 협회가 담당한다. 현재 41명의 상담·안내·회계 담당 정규직과 80여 명의 법률자문인, 80여 명의 자원봉사자 등 2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최근 협회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역시 불필요한 월세 상승을 막는 것이다. 최근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만큼 세입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월세 부담이다. 특히 주택 소유주는 세입자들의 동의 없이 월세를 올릴 수 없어 부엌, 계단, 승강기 등 주택 여기저기를 수리해 그 비용을 세입자들에게 부담시키는 방식으로 월세를 더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임대주택을 공사하면 수리비용의 최대 11%를 세입자들의 월세에 청구할 수 있다.

 

▲ 세입자들이 각종 임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서적과 홍보물 등이 마련돼 있다.
이에 따라 협회는 베를린시와 협의해 무분별한 주택 수리를 제한하도록 개선했다. 베를린시의 허가 없이도 수리가 가능한 공사에 대해서는 베를린시의 개입이 힘들기 때문에 협회가 직접 집주인과 소통해 협의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나아가 수리비용을 월세에 포함시키면 일정 기간 이후에는 모든 수리비를 세입자들이 부담한다는 맹점이 있는 만큼 그 비율을 4%까지 낮추기 위해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세입자들의 대변인 역할이 항상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공청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 참여하더라도 정책 의견 수렴에 있어서 베를린시와 동등한 자격을 갖추지는 못했다. 또 세입자 외 집주인이나 정부 등 다양한 주체를 대변하는 협회도 참석하는 만큼 이들을 모두 수긍시키기에도 무리가 있다. 게다가 협회가 세입자들의 고충과 개선 방안을 정리해 공식 서류로 제출하더라도 다른 협회 역시 이러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베를린시가 모두 취합해 조정하기까지는 실질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에 따라 협회는 협회 차원에서 즉시 세입자들을 도울 수 있는 조력자 역할도 해야 한다.

▲ 안드레아스 옴 샤를로텐부르거주택조합 자산관리 부서장
 협회는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세입자들의 상담 문의를 받는다. 총 상담 건수는 한 해 평균 8만여 건에 달한다. 집주인과의 법적인 문제부터 월세·관리비 고민, 세입자 간 갈등까지 상담 내용도 다양하다. 그러면 협회는 법률상담은 기본이고 세입자 간 소통 지원, 방열 등 난방비 절약 방법 안내 등을 진행한다. 한 달에 한 번 잡지를 발간해 지역 전반적인 주거문화와 임대주택 현황, 월세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뷥케 버너 협회장 대행은 "월세 상승뿐 아니라 베를린은 현재 공공임대주택 부족으로 자격을 갖추고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다"며 "그나마 2014년부터 공공임대주택 지원 정책이 발효되기 시작하는 등 주택 공급 노력이 이어지고 있고, 협회 역시 세입자들의 권리 보호는 물론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힘쓰고자 한다"고 말했다.

# 세입자들의 터전 마련, 샤를로텐부르거 주택조합

 최근 베를린 주택난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은 주택조합 가입에 눈을 돌리고 있다. 조합원이 되면 조합이 제공하는 주택에 한해 우선순위를 가질 수 있어서다. 베를린 내 가장 대표적인 주택조합 중 하나가 바로 ‘샤를로텐부르거 주택조합(Charlottenburger Baugenossenschaft e.G.)’이다.

 이 조합은 1970년대 조직돼 현재 1만3천500여 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다. 조합원이 되고자 하면 조합 주식을 구매해야 한다. 1주(770유로)를 사면 누구든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주택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려면 2주가 필요하다. 여기에 가입 처리비용으로 100유로가 추가 청구된다. 주택난이 심한 만큼 시민들은 조합에 가입하면 빠른 시간 내 주택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조합을 찾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새로운 조합원 모집을 중단한 상태다. 조합이 확보해 놓은 주택은 6천600여 가구로, 현재 조합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당분간 수요와 공급이 맞춰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주택 신축을 위한 토지를 구하고는 있지만 가격이 비싸 선뜻 매입하기도 힘들다. 토지가격이 비싸질 경우 건물을 지으면 월세가 일반적인 기준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이는 조합원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양질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조합의 목표에 어긋난다.

▲ 샤를로텐부르거주택조합이 베를린주 스판다우 지역 내 마련한 임대주택.
대신 기존 주택의 증축, 베를린 인근 지역 등 비교적 저렴한 토지 확보 등 다방면으로 더 많은 주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는 당분간 추가 조합원은 받지 않을 예정이다. 예외적으로 기존 회원의 1~2촌 가족까지는 가입이 가능하다. 주택을 얻는 우선순위는 무조건 가입기간이다. 다만, 큰 규모의 주택이 매물로 나왔을 경우 후순위더라도 대가족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등 융통성 있게 조건을 조정한다.

 조합은 안정적인 주택 공급 외에도 조합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요가, 체조, 보드게임 등 조합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으로 유명하다. 조합원들이 직접 인원을 구성해 이어오고 있으며, 각종 입장료나 이용료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참여는 무료로 할 수 있다. 홀몸노인 등 다양한 형태의 가구가 정기적으로 만나 친밀감을 쌓고 주거복지를 실현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다. 주택 내 빨래방의 경우 한 벽면을 유리로 만들어 밖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하는 등 건축적인 면에서도 각종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정기적인 건물 상태 점검 및 수리, 공동체 활동 등 조합 임직원들은 조합원과 같은 주택에 거주하는 이웃으로서 친밀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갑작스러운 실직 등 월세 부담이 어려울 경우 조합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돕기도 한다. 주택을 망치거나 상습적으로 월세를 내지 않는 등 공동체 분위기를 흐리는 조합원은 곧바로 회원권을 정지해 문제를 사전에 차단한다. 주기적으로 지자체의 감독을 받는 만큼 투명한 운영이 가능하다.

 조합 자산관리 부서장인 안드레아스 옴은 "가능한 한 모든 관공서에 주택 신축 필요성을 설명하며 토지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베를린 내에서는 적절한 가격의 토지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증축이나 신축 등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고, 이 경우 놀이터와 카페 등 주민 공동 공간을 마련해 조합원이 화합하고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독일 베를린=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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