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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축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이른바 J노믹스는 이미 북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경제 정책들이다. 이 정책들은 애초에 무모하고 비현실적이라는 회의론도 있었지만 실제로도 그 현실적 한계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들 정책은 한국 경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현재 정부의 의지와 열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하는데 다소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히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정부의 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 부작용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이 정책은 포용적 성장으로 간판을 바꾸고 겉표지를 갈았지만 여전히 내용은 성장 전략이 아닌 강력한 분배 정책이라는 측면에는 변함이 없다.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내수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늘어나야 소득도 늘어나고 경제도 성장하는 법이다.

소득 증가는 고용 증가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는 전적으로 기업이 만들고 늘린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집단이다. 설령 실패할지언정 이윤이 남는 곳에 투자해서 최대한 많은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자 존재 이유이고 경영의 목표다.

그래서 안정적인 경영권을 뒤로 한 채 과감하게 사내유보금으로 투자를 감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기업이 국내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는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삼성이 20조만 풀면 200만 명한데 200만 원씩 더 줄 수 있다고 말했다가 반시장적인 분배론적 주장이라는 지적과 함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다시 재벌에 갇혀 있는 자본을 가계로, 국민경제의 선순환 구조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라고 하면서 이 말이 그렇게 잘못된 말인지 되묻고 싶다고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잘못된 말이 아니라 경제를 잘 모르고 하는 말로밖에는 달리 들리지 않는다. 대기업이 국내에 자발적으로 투자를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그 제반 사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은 개혁의 한 방식이고 과정이지 최종 도달점이나 결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주도로 벌이고 있는 작금의 각종 개혁 작업은 과거 정권의 적폐 청산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처럼 집요하고 거칠어 보인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개혁 주체 세력의 이념적인 입장과 과거 정권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자리한다. 세계의 어느 정권도 해당 정권이 지향하는 국가 경영의 핵심 이념과 핵심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정권의 성패가 갈리는 것은 그 이념과 가치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하며 미래지향적인지 여부에 기인한다.

세조, 중종, 연산군, 광해군, 인조, 고종의 시대가 실패한 왕조로 전락한 것도 물론 이와 관련이 있다. 현 정권의 핵심 이념의 중심에 서 있는 분배 정책이 과연 오늘보다 더 윤택한 개인과 부강한 국가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면 정부는 새로 포장을 했을지언정 포용적 성장 정책을 밀고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내년에는 6가구 가운데 1가구가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배급과 유사한 정부 지원금으로 국가는 취약 계층의 경제적 어려움과 힘겨움을 당분간 면하게 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 중심의 경제가 정치적 구호가 아닌 이 정부의 핵심 가치가 되려면 국민을 막대한 세금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국민이 부자가 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세금은 늘고 세금으로 생존을 유지하는 국민은 줄어든다.

일자리는 세금이 아닌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로 만들어져야 부유한 개인이 양산된다. 대기업의 발목을 잡고 팔을 비틀며 재벌을 혼내고 합리적인 차별과 발전적인 경쟁을 가로막는 각종 관치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장ㆍ효율ㆍ경쟁’과 ‘평등ㆍ분배ㆍ인권’은 동전의 양면이다. 세종은 그들과 저들 편에 서 있던 최만리를 끌어안아 한글을 창제할 수 있었다. 한글에 녹아있는 핵심 이념인 애민정신과 핵심 가치인 자주ㆍ실용정신의 실현이 가능했던 세종의 리더십에 더욱 눈이 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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