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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대표하는 만화 주인공들이 있다. 태권도와 로봇을 결합시킨 무적의 ‘로봇 태권V’는 1970년대를 대표하고 있으며, 1980년대에는 빙하를 타고 내려와 쌍문동에 정착한 ‘아기공룡 둘리’가 귀여운 말썽꾸러기의 대명사가 됐다. 1980년대 후반에는 올림픽 열풍과 함께 스포츠가 주목받았는데, 특히 육상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이를 반영한 캐릭터가 ‘달려라 하니’로 일찍이 엄마를 여읜 슬픔을 달리기로 극복하고자 한 다부진 소녀였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라는 주문만 들어도 경쾌한 주제곡이 떠오르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미스터 손’은 동료인 사오정, 저팔계와 함께 악당을 물리쳤다. 이렇듯 추억의 만화를 떠올리다 보면 어린 시절의 우리 모습도 돌아보게 된다. 만화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고, 꿈꾸던 그 시절의 이야기 중 오늘은 유독 호기심과 감수성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와의 재회를 가져 보고자 한다.

 주근깨로 빼곡한 볼, 앙상한 팔과 다리, 머리는 홍당무처럼 빨간색인 고아소녀 앤은 초록색 지붕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된다. 새로운 가족을 만날 거라는 기대에 부푼 앤과는 달리 기차역으로 소녀를 마중 나온 매튜 아저씨는 앤을 보자마자 일이 잘못됐음을 확신한다. 매튜 아저씨가 요청한 아이는 농사일을 도울 수 있는 남자아이로 앤과 같은 소녀가 아니었다.

그러나 구김살 없이 발랄하고 귀엽게 조잘거리는 앤의 모습에 아저씨는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초록색 지붕 집으로 향하는 5월의 길목은 앤에게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남자아이를 기대한 마닐라 아주머니는 앤을 고아원으로 돌려보낼 거라는 말을 전한다. 기쁨과 희망이 한순간에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실수로 초록색 지붕 집으로 오게 된 앤은 매튜 아저씨, 마닐라 아주머니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캐나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초록 지붕 집의 앤(Anne of green gables)」은 한 세기 전인 1908년에 출판된 소설로 소녀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오늘 소개한 극장판 ‘빨간머리 앤:그린 게이블로 가는 길’은 일본에서 제작해 1980년대 국내 TV로 방영한 바 있는 이야기 중 초록색 지붕 집에 정착하게 되는 초기의 스토리만을 다루고 있다. 밝은 에너지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앤이 초록색 지붕 집에 정착하면서 적막했던 집안엔 활기가 돈다.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앤의 엉뚱하고도 아름다운 상상력에 있다. 꽃과 나무 등의 자연과 이야기하고 생각만으로 언제든 요정이나 공주가 될 수 있었던 앤의 평범하지 않은 사고방식은 종종 오해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앤 특유의 소녀 감성은 곧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무섭기만 했던 마닐라 아주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돼 다시 앤을 만나니 오랜 시간 잊고 지낸 파스텔 톤의 감성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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