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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영국의 어느 시골의 병원에 초라한 모습의 부인이 들어와 애원합니다.

 "제 남편이 죽어갑니다. 살려주세요."

 왕진가방을 챙기는 의사에게 부인이 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하자, 의사는 괜찮다며 사람부터 살리자고 했습니다. 부인의 집에서 남편을 진찰한 의사는 큰 병은 아니라고 말하고서 처방전 받으러 병원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병원에 온 부인에게 의사는 작은 상자 하나를 주며 말했습니다.

 "이 상자를 반드시 집에 가서 열어보세요. 이 안에 적힌 처방대로 하면 남편분의 병은 금세 나을 겁니다."

 부인이 집에 와서 상자를 열어보니 한 뭉치의 돈과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쪽지를 펼쳐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처방전 : 남편은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입니다. 이 돈으로 무엇이든 드시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서 드리세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행」이란 책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빈 상자에 돈을 넣는 의사의 마음은 마치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의 마음과도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 원기를 회복한 부인의 남편이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기대하며 의사는 기뻤을 겁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남편까지 쓰러져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던 부인이었습니다. 상자를 열어보고서는 눈물을 왈칵 쏟았을 겁니다. 감사의 눈물일 겁니다. 절망의 늪 속에도 이렇게 희망의 지푸라기가 있다는 사실에 부인은 다시 살아갈 용기를 냈을 겁니다.

 유명화가인 밀레와 정치사상가인 루소의 우정에 대한 일화도 감동을 자아냅니다.

 무명화가이던 밀레는 순수한 그림을 고집한 탓에 아무도 그의 그림을 사지 않았습니다. 온기 없는 냉방에서 며칠째 굶고 있던 어느 날, 밀레가 그림 하나를 완성하고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얼굴이 핼쑥해진 가족을 보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서 이 그림을 팔아 양식을 구해 와야 할 텐데.

 그때였습니다. 친구인 루소가 들어오더니 "여보게, 드디어 자네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자네 얘기를 했더니 나더러 그림을 골라 달라며 선금까지 주었네."

 루소는 밀레에게 300프랑을 건네주었습니다. 이 돈으로 한동안 밀레는 편안하게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유명화가가 된 밀레가 모처럼 루소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거실에 그림 한 장이 걸려 있는데, 그 그림이 바로 300프랑에 팔았던 그 그림이었습니다. 밀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루소의 깊은 배려가 돋보입니다. 이 일화 역시 우리가 사랑을 어떻게 나누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시골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간 어느 부부의 수기에서도 사소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부엌을 정리하던 부인이 찬장에 붙어 있던 쪽지를 떼어 읽어줍니다. 이사 나간 사람이 써놓은 것이었습니다.

 "이사하느라 힘드셨죠? 우선 시원한 수돗물을 드셔보셔요. 지하수지만 깨끗하고 맛도 좋아요. 저희도 3년 동안 그냥 마셨는데 아무도 탈난 적이 없어요. (…) 이 쪽지를 발견하실 때쯤이면 얼추 이사는 끝나고 짐을 정리할 때겠네요. 배도 고프실 거고요. 사용하던 가스가 남아 있지만, 아직 가스레인지와 연결을 하지 않으셨다면 중국음식이나 아이가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 드세요. 읍내에서 배달이 되거든요. 양도 많고 맛도 괜찮답니다. 번호는 000입니다. 끝으로 새로 이사 오신 집에서 맞는 첫날밤에 좋은 꿈꾸세요."

 참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이사 올 사람에게 글을 쓰고 있는 어느 아주머니의 모습, 텅 빈 상자 속에 돈을 넣는 의사, 친구의 그림을 몰래 사주는 루소, 이런 사람들 덕에 세상은 조금씩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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