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인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에는 관청에서 서류를 정서하는 일을 맡고 있는 9급 문관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어느 하루 자신의 외투가 너무 낡아 더 이상 페테르부르크의 혹한을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봉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이미 낡을 대로 낡아 수선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새로운 외투를 사기로 결심한다. 노력 끝에 드디어 새 외투를 장만했지만 그는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이를 되찾기 위해 어느 고관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절차를 무시한다며 호통만 듣고 심한 충격을 받아 끝내 죽는다. 고골은 이 작품에서 억압받는 아카키의 모습을 동정과 연민으로 그리면서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관료제도를 비판한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삶의 목표가 외투에 지나지 않는 인간을 희극적으로 묘사하며 당시 러시아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을 표현해냈다.

 최근 수원시가 염태영 시장을 시작으로 공무원들의 반바지 옷차림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다른 조직보다 상대적으로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경직성이 심한 관료사회에서 반바지 착용이 가능하겠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매년 여름철마다 정부와 기업에서 겉으로 ‘쿨비즈’를 권하고 있지만 한국 직장에서 특유의 예의를 따지는 문화로 인해 이를 자유롭게 입고 다니는 사례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공무원 조직에서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염 시장이 먼저 적극 반바지를 입고 공식 행사장에 등장하거나 업무를 보자 부서마다 반바지 차림의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원시 공무원노조도 반바지가 일의 능률을 올리고 에너지 절약에 효과가 있다며 반바지 착용을 지지하고 있다. 「외투」는 아카키가 살았던 페테르부르크에 그가 죽은 후에 외투를 뺏는 유령이 나타났다는 내용으로 소설의 이야기를 끝맺는다.

 정부는 기록적인 폭염에 국민들이 ‘전기세 누진세’로 에어컨을 마음 놓고 작동하지 못하자 누진세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적은 인하 요금으로 인해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가 닷새나 지났음에도 폭염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우리가 관행이라는 이유로 늘 입어왔던 옷만 입으면서 형식을 내세운다면 결국 정부가 더위를 식혀주지 못하는 한여름 밤에 어쩌면 아카키의 유령처럼 ‘반바지’를 찾아 헤매는 날이 오지 않을까 혼자 상상해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