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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준영 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
지난 토요일 오후 2시, 인천내항 8부두의 우선개방지역 주차장, 3만3천여㎡에 버스 2대와 승용차 18대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날 같은 폭염의 날씨가 아니라도 그곳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거의 비어 있다. 1년에 한두 번 ‘바다의 날’과 같은 행사에만 북적거린다. 무려 3년 가까이 그랬다. 도심 한복판인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8부두는 1974년 이후 출입이 통제된 항만이었다. 수입되는 고철과 원목을 쌓았다. 공해 등 환경문제가 대두되자 주민들은 항만을 되돌려 달라는 운동을 했다. 2007년에는 7만2천 명이 국회에 청원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정부, 항만공사, 업계, 주민들은 단계적으로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난관이 많았다. 결국 내가 인천항만물류협회장을 하던 2015년, 그곳에서 일하던 두 회원사가 사업을 정리했고 항운노조원들은 협회 회원사들에 다시 배치했다. 몇 달간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힘든 조율 과정이었다. 마침내 8부두를 개방했다. 그러나, 그곳은 방치됐다. 재원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변화의 조짐이 있다. 8부두 일부를 바꾸고 운영할 사업자가 선정됐다. CJ CGV㈜다. 진행할 상상플랫폼 사업은 기둥과 벽이 없는 단일공간으로는 아시아 최대인 8부두 내 폐곡물창고(270m×45m)를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다. 국·시비 396억 원을 들여 창고부지 매입과 리모델링을 하고 운영사업자에 20년간 운영을 맡긴다. 내년 12월에 문을 연다. 총면적 20% 이상은 창업·창작·교육 등 공공목적이며 나머지 80%는 문화·관광 용도다.

 그런데, 몇몇 시민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문화, 관광’이 지극히 상업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사실 시민 요청으로 돌아온 공간이라면 시민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맞다. CJ CGV㈜는 우선 주민설명회를 통해 사업을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많은 사례 연구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 자체는 전문가들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기본적인 원칙과 틀은 주민들이 참여해 충분한 학습을 한 후에 직접 정하게 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공론조사도 방법이다.

 8부두의 청사진에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원도시가 축적한 역사, 문화와 함께 어우러지게 해야 한다. 근대건축물과 자유공원 그리고 차이나타운 등 스토리가 이어져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쇼핑몰 같은 공간은 사절이다. 그런 곳은 유행이 지나면 사람들이 뚝 끊긴다. 일본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21은 항구 주변의 시설 및 건축과 어우러지게 흰색 가까운 밝은 톤으로 했다. 둘째, 상업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 내항 주변에는 이미 특색 있는 시장과 상점이 즐비하다. 겹치는 상업시설을 늘리면 주변과 경쟁할 수밖에 없고 주변 상권이 피폐해진다. 주머니 부담 없는 미술관, 뮤지엄, 공원 등 공공시설을 정부 예산으로 많이 지어야 한다. 시민들이 일하고 공유하고 또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우선이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려면 정부 지원이 꼭 필요하다. 지금까지 사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은 사업 공모를 해도 사업성이 안 나온다고 해 유찰돼 왔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상업시설 비중이 높아졌다. 주민의 삶과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초심은 점점 잊혀졌다.

 정부(국토해양부)가 2009년에 만든 ‘인천 내항 항만재개발 사업 최종보고서’에서 기본 추진 방향에 대한 전문가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더 확실하다. 친수공간형 65%, 상업위락형 15%, 문화미술형 12%, 미래주거형 4%였다. 개방결정도 2015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인천에 와서 직접 기자회견했다. 그런데 친수공간형은 자꾸 후순위로 밀리는 실정이다. 정부의 통 큰 지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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