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는 본래 ‘기묘한, 괴이한’이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다. 이러한 혐오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의 영문 첫 글자)를 포괄적으로 지칭하고, 이성애에 대응하는 상징적인 명사로 거듭났다. 이들이 중시하는 퀴어문화축제는 1969년 뉴욕 경찰이 당시 동성애자들의 아지트였던 술집을 급습한 것에 대해 반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을 기념한데서 유래됐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부터 시작됐는데 지난해에는 제주와 부산에서, 올해는 전주와 서울에서 개최되는 등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인천지역 내 성소수자와 인권단체가 인천에서도 축제를 열자는 뜻을 모아 ‘인천퀴어문화축제 준비위원회’를 조직했고, 결국 오는 9월 8일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장소 미정)’를 여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시민들은 퀴어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다. 극단적인 일부는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고, 에이즈 확산과 출산율 저하에 기여함으로써 국가경제의 몰락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축제에 대해서도 현란한 의상과 노출, 동성 간의 애정 표현이 비교육적·선정적이라며 반대한다. 이번 축제 역시 이러한 이유를 들어 일부 종교계와 학부모 단체에서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원한다면 축제는 열려야 한다. 문제의 본질이 동성애의 도덕성이 아닌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싫어한다고 소수의 특정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인권의 본질에 반한다. 평화적인 집회와 결사, 표현의 자유는 성적 정체성에 상관없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권리다.

 물론 퀴어는 주류 문화의 보편성을 거스르는 ‘낯설음’과 ‘불편함’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사회가 학습하고 용인해 온 주류 문화라는 것도 실상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적 현상에 불과한 것 아닌가. 지난 2015년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법 앞에서의 평등한 존엄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 아닌 동성애에 대해서도 적용돼야 한다’는 연방대법원의 합헌 결정이 있었다. 낯설음과 불편함을 느끼는 그 마음을 없애진 못하더라도 공존의 가능성까지 걷어차선 안 된다. 혹시 모를 내 가족과 친구들의 삶이 지옥으로 바뀌는 상황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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