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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월드 스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바탕 지구촌을 ‘말춤’의 열풍에 휩쓸리게 하더니 요즘은 ‘방탄소년단’ 열풍이 가히 신드롬이라고 부를 정도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빌보드 차트 상위 점령은 물론이고 ‘방탄소년단’ 콘서트 예매가 단 몇 초 만에 매진돼 버리는 진기록을 세웠다는 소식도 들린다. 더구나 ‘싸이’나 ‘방탄소년단’의 열성 팬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어서 어딜 가든 열광이라니 월드 스타라고 불려도 하등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 놀라운 현상은 수년 전 일본이나 중국을 중심으로 확산됐던 한류 열풍과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그 전과 다르게 유튜브(YouTube)와 같은 SNS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화된 것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싸이’나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타들의 공연을 손 안에서 바로 시청할 수 있는 놀라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SNS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스타들의 모습은 청소년들의 꿈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하철역 광장이나 공원, 대학가 등 적당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청소년들이 몰리고 버스킹을 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브레이크 댄스공연을 하는 비보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서구 문화에 길들여진 청소년들만의 풍속이나 문화가 형성되게 되고 날이 갈수록 세대 간 계층 간 문화적 괴리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게 됐다. 나아가 이런 현상은 우리 문화를 경시하는 풍조로까지 발전돼 지금은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 소리’ 혹은 ‘우리 음악’ 인 ‘국악’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내지는 경시 현상이다. 판소리를 하거나 가야금과 같은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는 어린 학생이라도 있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게 됐고, 전래 민요를 넉살스럽게 잘 부르거나 날라리라고도 부르는 태평소를 능숙하게 연주하기라도 하면 화제의 인물이 되는 세상이 됐다.

 국악방송이 있기는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들어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을 본 일이 없을 뿐더러 생소하기까지 하다. 내가 즐겨 듣는 우리나라 한 공영방송의 클래식 프로그램에도 우리 소리와 관련된 것은 일반인들이 잘 접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겨우 끼워 넣기 식으로 편성돼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기성세대까지 ‘우리 소리’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 들고 이제 와서는 점점 잊혀져 가는 존재가 돼 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시대의 흐름이 그러하고 서글프다 못해 청승맞기까지 한 우리 소리보다 감미로운 서양음악이 훨씬 좋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이제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우리 소리에도 좀 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얼마 전 고인이 된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의 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생전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지나치게 우리 고유의 소리를 고집하기보다 적절하게 다른 나라의 음악과도 혼용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퓨전 형식의 음악이 세계적 트렌드라고도 말했다. 미국 흑인의 민속 음악과 백인의 유럽 음악이 결합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미국에서 생겨나 오늘날까지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재즈 음악도 창의적으로 발전한 퓨전음악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 대중음악가나 클래식 연주자, 국악 연주자들이 함께 컬래버 무대를 꾸며 좋은 평가를 받은 일들이 많다. 미국의 저명한 뮤지션들은 이구동성으로 앞으로의 음악은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선한 음악과 악기들이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무조건 잘 알려진 서구 음악만 따라 하기보다는 각 나라의 전통 음악과 소리, 악기를 잘 살린 개성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소리에 관심을 갖고 친숙해지자. 그리고 우리 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멋진 음악이 만들어질 날도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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